언어폭력 하지 않기 위한 마음수련 실체

언어폭력에 대한 책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

되게 안 좋은 상황들은 이따금씩 찾아오는 것이 아닌 폭풍처럼 몰아서 오는 경우가 많다. 그 안좋은 상황 중에서 가장 쉽게 상처가 되었던 것은 바로 우리가 일상처럼 나누는 대화 속에서 큰 상처를 받고는 한다. 우리가 나누는 언어 속에, 대화 속에 대체 어떤 말들이 듣는 이로 하여금 상처가 되는 걸까?

저는 운전을 더럽게 못한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정말로 제 운전 실력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죠.

아마 세뇌된 것 같아요.

그거 아세요?

운전대를 잡은 지난 27년간,

사고를 내기는커녕

딱지 한번 뗀 적이 없다니까요

발췌내용: 언어폭력_저자 퍼트리샤 에반스

책에서 말하는 언어는 폭력의 대상이라고 단정 짓는다. 이 언어폭력들은 분노 폭발이나 욕하기처럼 대놓고 행해질 수도 있고, 세뇌처럼 아주 미묘하고 은밀하게 행해질 수도 있다고 한다

노골적인 언어폭력은 주로 책임 전가나 비난을 통해 상대에게 혼란을 일으키기도 하고, 은밀한 언어폭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공격으로, 상대를 더 큰 혼란에 빠뜨리게 된다. 은밀한 언어폭력은 진심으로 걱정하는 듯한 목소리로 상대방을 깎아 내리는 식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가 아주 조용하게, 심사숙고한 듯

우리가 같이 독서토론을 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말이야, 다른 사람은 다 이해하는데 당신은 이해 못하는 흔한 문장들이 있기 때문이야”

라고 말했을 때, 저는 ‘아, 내 그런 점 때문에 우리 대화에 그렇게 어려움을 겪었나 보다’ 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고통과 절망감을 느꼈어요.

그렇다면 제가 느끼는 모든 고통은 결국 다 제 잘못 때문인 거니까요.

발췌내용: 언어폭력_저자 퍼트리샤 에반스

언어폭력의 실체

대화를 나누다 보면 서로 막히는 경우가 분명 있을 것이다. 했던 말을 반복하고 있거나 또 어느 쪽은 계속 말을 하는 대도 알아듣지 못하고 있다거나 이런 상황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면 말을 내뱉게 되는 사람도, 말을 듣게 되는 사람도 모두가 기분이 좋지 않다. 반복해서 말을 하게 되는 사람은 짜증이 날 수도, 상대에 대한 실망감이 들 수가 있을 것이고, 반복해서 듣게 되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마음 속 깊은 피해의식에 사로 잡힐 수도 있다. 반복되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피해의식은 내 문제를 먼저 인식하기 전에 일방적으로 상대 탓과 상황을 탓을 하며 자신의 한계점을 설정 하고는 하는데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 설사 상대가 고함을 칠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주장해도, 나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 설사 상대가 농담으로 그런 것이라고 주장해도, 나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 내가 잘못했기 때문에 그가 고함을 친 것이라고 주장해도, 나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 그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고 주장해도, 나는 그 말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 그가 나에게 “항상 옳아야 직성이 풀린다”고 비난해도, 나는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 그가 나에게 “미친놈”이라고 해도 나는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백가지 폭력을 다 받아 들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 설사 내가 실수를 했다 해도, 더 이상의 폭력을 용인하지는 않겠다. 사소한 실수와, 무지에서 오는 실수에 상대가 불같이 화를 내거나 나를 깎아 내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

언어폭력 책 한구절

서로 간의 감정이 자주 격해지고, 상대의 말이 언어 폭력이라고 인식이 되는 순간 피해자는 엄청난 자기 보호에 들어가게 되고, 결국 그 모든 원인을 상대의 탓으로 돌리며 자기 스스로는 강력한 피해자 이기에 두 번 다시 그런 일을 겪지 않으리라 다짐 하기도 한다. 이미 감정적으로 한계점이 온 것이다. 자존감은 극도로 떨어지게 되며, 온통 부정적인 마음으로 덮여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대인기피증까지 오는 경우도 있다. 그런 상황이 지속되면 스스로를 엄청난 고립 속으로 넣어버려 세상 모든 것과 단절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렇게 온몸과 온 마음을 다해 부정적인 마음을 쏟아낸 후에는 한없이 외롭고, 우울한 상황이 오게 되고, 말수는 점점 줄어들며 작금의 이 상황이 비로소 자기 자신이 못나고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 진 것으로 생각하고, 자기에 대한 실망감과 이런 일상이 반복되는 삶이라고 단정 지으며, 끊임없는 자책을 하는 시기이다.

  • 왜 나는 항상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좀더 잘 설명 했다면 내 질문이나 생각 때문에 상대가 화를 내지는 않았을 테지.
  • 내 이해력에 문제가 없었다면, 상대가 말하는 것처럼 일을 ‘잘못’ 받아들이는 일은 없었을 거야. 그러나 그 문제가 무엇인지는 도무지 모르겠어.
  • 내가 무능하지 않았더라면, 말을 잘못 이해하거나 별 것 아닌 일을 크게 만들지 않았다면 이렇게 상처 받고 고통스러울 일도 없었겠지.
  • 상대는 다른 동료나 친구에게도 나한테 하는 것과 똑같이 행동하는데 그들은 그런 것을 문제 삼지 않으므로 문제가 있는 쪽은 바로 나였어.
  • 나에게 뭔가 결핍이나 결함이 있기 때문에 쓸데없이 힘들어 하는 것 같아.

마음수련 언어폭력의 실체

자기 스스로를 탓하면서 겪게 되는 감정의 경험은 자기자신을 완벽하게 고립시키며, 살아왔던 삶 전체를 부정하게 되고, 후회하게 된다. 결국 지금 마음이 너무 힘들다고 단정하여, 말수는 급격히 줄어들며 몸에 힘이 빠지고, 하루하루가 그야말로 고통의 시기가 찾아 오게 된다. 이처럼 언어 폭력에 피해를 입은 당사자는 특히나 이런 삶이 꽤 반복적이었던 사람은 정신적으로 많이 피폐해 져 있으며, 멘탈은 아주 얇은 유리처럼 언제 깨질지 모르는 매우 조심스러운 상태라고 할 수 있고, 본인 스스로도 여러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되며, 아주 나약한 자신을 불쌍히 여기며 살아가게 된다. 언어폭력의 실체는 나도 모르게 상대의 자존감을 무너뜨릴 수 있는 아주 심각한 행위이며, 특히 가해자일 경우 자기가 했던 말때문에 상대가 어떤 감정상태를 겪게 되는지 전혀 알지를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행위를 충분히 사전이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내가 어떤 말을 자주 하는지, 내가 어떤 행동을 반복해서 하는지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내가 한 말보다는 내가 보고 들었던 말을 정확하게 기억하기 때문에 평소에 내가 어떤 패턴으로 행동하고 말을 하는지 자기자신을 되돌아볼 필요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꼭 필요할 것이다.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방법은 자기가 했던 행동을 천천히 되돌아보며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데…

언어폭력과 마음수련 실체

객관적으로 자기자신을 되돌아보는 방법 가운데는 명상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명상과는 다르게 자기 자신을 끊임 없이 되돌아보고 그런 마음을 아주 객관적인 시각에서 버릴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효과적인 명상이 마음수련 실체다. 나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자기가 했던 행동 말 등을 천천히 되돌아보게 되면 지금 나에게 벌어지고 있는 모든 상황에 대해 제대로 인식 할 수 있게 된다. 내가 하는 행동과 말이 정말 철저히 내 중심적으로만 이뤄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정말 그동안 내가 상대를 배려 했다거나,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이야 생각했던 그 모든 것들이 객관적으로 나를 돌아보는 순간 거짓임을 마주하게 되는 게 마음수련 실체다.

나는 늘 피해자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또다른 누군가에게 똑같이 행동하고 있었어

내게 심한 말을 했던 상대만 줄곧 미워했지만 결국 그 원인 제공은 내가 한 것 이었어

지금의 상황이 힘들다고 했지만 사실 나 혼자만 다르게 생각하고 있던 거야

나는 충분히 부족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되는 거였어

실제로 내 마음을 정말 진지하게 돌아본다면, 내가 겪고 있는 상황과 마음들이 사실 별 것 아닌 것이라고 생각 할 수 있는 큰 마음을 얻게 된다. 거기다 그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피해의식과 같은 마음들은 마음수련 실체로 버릴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힘들다고 하는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결국 나에게 벌어지는 상황은 내 마음을 바뀌었을 때만이 변화 시킬 수가 있다. 상대에게 좀더 솔직해지고, 내 생각, 내 마음을 좀더 진중하고 차분하게 설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상대는 내 말을 진중하게 듣게 되고, 이해해줄 수 있게 된다. 내가 안 바뀌면 절대 상대와 상황을 변화 시킬 수 없다.

언어폭력과 내 마음 돌아보기

언어폭력은 절대 해서는 안될 행동임은 분명하다. 언어폭력을 당했을 때 그 마음의 상처는 직접 당해보지 않고서는 절대 모른다. 그리고 한번 다친 상처의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 자기가 당해보지 않으면 절대 헤아릴 수 없다. 언어폭력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아무리 똑똑하고 사리분별력이 좋고 생각이 깊은 사람도 언제 언어폭력이 일어날지는 절대 예측하지 못하며, 대게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폭력을 당할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인식하자. 분명한 것은 내가 듣기 싫은 말은 상대도 듣기 싫다. 내가 보기 싫은 행동은 상대도 보기 싫어한다. 그러니 절대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말자. 언젠가 자신에게 다시 돌아올 상처가 될 수 있으니.

 

마음수련 실체, 행복에 대하여

사람들은 누구나가 행복이란 단어를 좋아한다. 지금이 행복하다면, 과연 행복한 삶을 위해 쉴 틈 없이 달리고 있을까. 내가 처한 현실이 대부분 불만족스럽기에 그 부족함을 채우고 싶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 중 가장 높은 단계의 개념이 행복 추구가 아닐까 싶다.

그럼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어떤 사람이냐고? 나 역시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막연한 행복의 실체를 잡기 위해 긴 시간을 달려온 게 사실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친구들과 만나고, 대학에 진학하고, 직장을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고… 쳇바퀴처럼 도는 삶에서 내가 추구하는 가치의 끝은 어디인가.

마음수련, 행복의 실체에 대하여

사실 그것보다 앞선 근본적인 의문은 내가 진정으로 무얼 하고 싶은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 모르겠다는 것이다. 내 스스로가 원하는 것에 대한 불확신이… 현재, 그리고 나아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자꾸만 공허하고 허전한 마음이 들게 된다.

더 확장시켜 보자면 그럴수록 잘 살고 있는 것만 같은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게 되고, 눈치보게 되고, 움츠러들고 또 그럴수록 내 자존감은 낮아지고…이러한 감정과 생각들이 돌고 돌아 제자리에 머무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OTL… 그래서 현재는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수련 실체를 찾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비누방울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것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그럼 내 행복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누구나가 꿈꾸는 그것은 어떤 감정이며, 어떻게 하면 얻어질 수 있는 것일까. 오랜 시간 행복에 대해 연구한 심리학자들 역시 여러 방면에서 행복해지는 삶의 조건에 대해 고민해왔다. 충분한 소득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하는 일반론에서부터, 적절한 취미생활, 수면, 가정환경 등이 생활에 영향을 가져온다는 연구 결과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그렇다면 과연 위에서 언급한 그러한 조건들이 충족 되어지면 사람은 누구나 행복의 실체를 잡을 수 있을까? 세계적 행복학자인 Raut Veenhoven은 말했다. 위의 조건들이 맞춰진다고 해도 모두가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바로 개인 감정의 특성 때문이라고. 즉, Happiness는 특정한 어떤 감정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매우 ‘주관적인’ 만족감이기 때문에, 주위에서 보기에 최고의 조건을 가지고 있더라도, 본인 스스로 불만족스러우면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결국 행복의 전제조건은 어떤 환경, 경제적 조건 등이 아닌 내가 무엇을 추구하고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본인 스스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이를 통해 자기 자신에게 알맞은 삶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짚어가야 할 것은 내 자신을 어떻게 알아가느냐 인데…나의 경우를 살펴보면 이 해답을 마음수련 실체를 통해 조금씩 알아가게 된 것 같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 어떤 감정들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지…차근차근 나를 돌아보는 시간들이 꼭 필요했었다고나 할까. 한 마디로 내 자신을 돌아보는 것! 그리고 나란 인간의 실체를 파악하고, 그것을 형성하는 생각들을 버려나가는 것. 이를 통해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 진정한 내 자신을 마주하게 되고, 내면으로부터의 확신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사실 그 어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의 행복이니까.

마음수련을 통해 만나는 행복의 실체

그래서 지금 어떠냐고? I’m Happy! 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마음수련, 나도 모르게 하는 실수들의 실체

마음수련, 나도 모르게 하는 실수들의 실체

작은 실수부터 큰 실수까지 나의 삶은 내내 크고 작은 실수투성이다. 무심코 툭 내뱉은 말 때문에 곤욕을 치르거나 아무 생각 없이 행동을 해서 아주 난감한 상황을 만들거나 나도 모르게 한 행동 때문에 주위를 놀래키곤 했다.

초등학교 4학년때인가, 그래 4학년. 박영희 선생님이 담임이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하루는 우리 반 애들이 숙제를 많이 안해와서 선생님이 매우 화가 나셨었다. 선생님은 너네 뭐야. 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 단체로 숙제도 안하고. 도대체 문제가 뭐야? 라고 하시며 화를 내셨는데 제일 앞자리에 앉아 있던 내가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을 했다.

선생님이 잘못했겠지.”

순간 정적. 선생님이 순간 나를 탁 쳐다보시며 한참을 그대로 바라보셨다. 나도 너무 놀래서 선생님을 계속 쳐다 봤던것 같다. 머리 속이 너무 바빴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한거지? 선생님한테 뭐야. 내가 미쳤나? 대체 왜…’ 선생님은 결국 나를 부르셨고 수많은 욕과 함께 약 30분 넘게 쳐 맞았던 기억이 난다. 때리던 선생님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셨던 것 같고, 맞고 있던 나 또한 너무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못하고 계속 맞고만 있었던 것 같다.

무심코 툭 튀어나온 말의 실체. 정말 다시 생각해봐도 의도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어떻게 미치지 않고서야 선생님한테 대놓고 ‘당신이 잘못했자나’ 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분명 그것은 실수다. 물론 어린시절 선생님은 존경의 대상이고 믿고 따르는 대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서운 존재, 나를 귀찮게 하는 존재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무의식 속에 선생님도 한번 당해도 싸다는 생각을 했을 테고, 그 마음이 결국 한 순간 표출되었을 지도 모른다. 무의식 속에 있었다해도 그것을 표현했다는 것 자체가 그 당시 엄청 큰 충격이었다. 말 그대로 엄청난 실수였다.

 

말실수의 실체

최근에도 기억에 남을만한 실수를 했었다. 내 친구 동식이랑 있을 때의 일이다. 동식이는 살면서 단 한번도 여자친구가 없는 기간이 없을 정도로 연애 중독인 친구다. 동식이랑 홍대카페에서 만나기로 했고, 그 자리에 여전히 동식이는 여친과 함께 나왔다. 나는 당연히 최근에 얘기한 그 친구려니 생각하고 “동식이랑 사귀니까 어때요? 재밌죠?”라고 했는데 순간 짧은 정적이 흐르면서 하는 말이 “사귀는 사이 아닌데요?”라고 하는 거다. 헉! “아,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 굉장히 뻘쭘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동식이는 내게 “이 형이 미쳤나. 왜 안하던 오바를 해! 좀 조용히 있어, 좀. 제발!”라고 하는 거다. 나는 진짜 사귀는 것처럼 보여서 한 말인데… 에이… 진짜…

그 후 동식이한테 연락을 받았고 그 때 그 사람이랑 사귀게 되었다고 했다. 하… 참… 이건 또 뭐냐… 그때 그 뻘쭘과 함께 짜증이 막 올라왔다. “거 봐라. 너네 딱 봐도 그렇게 보였는데 와 사람하나 이상한 사람 만들고 진짜” 그러면서 욕을 해댔었다.

그리고 얼마 전 동식이를 만났다. 그 때 만났던 그 사귀게 되었다던 그 여친이 같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냈다. “안녕하세요~ 그때 동식이랑 썸 탈 때보다 지금 더 이뻐지셨네요~~호호호” 그런데 또다시 정적이 오는 거다. ‘설마… 뭐지? 얘네 왜 이러지?’ 옆 자리에 있는 동식이에게 카톡이 왔다. “형, 나 얘랑 헤어졌어. 제발 입 좀 다물자. 제발!”

와, 내 참 어이가 없어서. 대체 이건 내가 실수한 게 맞나 싶었다. 이건 내 실수라고 하기에는 상황이 정말 야속한 것 아닌가? 그렇게 난 또 자리를 불편하게 만들게 되었고 정말 너무 황당 스러웠다. 하지만 상황적으로는 내가 또 실수를 한 것이 “죄송해요. 제가 일부러 실수를 하려고 태어난 사람 같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라고 정중히 사과하고 그냥 조용히 처묵처묵 했던 것 같다.

 

실수 또로록

 

이런 실수에서 난 정말 ‘자기가 알고 생각하는 것 밖에 말하고 행동할 수 없구나’ 를 느끼게 된다. 결국 내가 봐온 기억이 전부이고, 내가 하는 생각은 절대 정답일 리가 없다는 것이다. 내 생각이 정답이라고 확신을 갖는 순간, 실수가 찾아 오는 것이 아닐까 란 생각도 든다. 그동안 했던 실수들을 되돌아보면 크던 작던 간에 나도 모르게 했던 행동과 말이 거의 대부분이어서 다소 억울하기도 하고, 정말 되돌리고 싶을 만큼 후회스럽고, 자다가 이불 킥할 만큼 정말 떠올리기 싫은 기억들이 태반이다.

인생 선배들은 실수의 실체에 대해 말하길

“실수를 두려워하지 마라” / 알버트 아인슈타인

“살면서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는 실수할까 봐 계속 걱정하는 것이다” / 앨버트 하버드

“실수할 자유가 없는 자유란 가치가 없다” / 마하트마 간디

“우리가 하는 독창적인 일은 실수뿐이다” / 빌리 조엘

라고 하지만 막상 실수를 하게 되면 언제나 나를 위축되게 만들고, 후회하게 만들고, 부끄럽게 만든다. ‘내가 왜 그랬지?’ 하면서 말이다..

 

나란 인간

 

살면서 누구나 실수는 한다. 그렇지만 실수를 하지 말아야지 하는 것 보다 실수를 왜 하는지, 이런 실수에 대해 나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마음수련 명상 방법으로 실수하는 마음의 실체에 대해 좀더 깊게 들여다 보고자 한다.

 

  1. 대부분의 실수는 나도 모르게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수는 나도 모르게 하는 것이 아니다. 실수를 할 때는 나도 모르게 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놀라게 되고 그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그런데 정말 나도 모르게 그런 행동을 했을까? 어떤 이는 이런 행동 패턴을 무의식으로 인한 행동으로 단정짓곤 하지만 사실 무의식이라고 하는 것도 깊게 들어가보면 결국 내 마음 속 깊숙이 자리잡은 마음이다. 겉으로 들어나지 않은 마음, 결국 그 실체는 내 마음(=생각)이다.

무의식적으로 나온 행동이었기 때문에 내 잘못이 아니다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순간적으로 내뱉는 말이나 행동도 결국 그 생각(=마음)이 내 안에 있었기 때문에 표출 된 것일 뿐이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수많은 것들 중의 하나이고, 그 중에 어떤 것은 왜곡된 기억일 것이고. 그런 수많은 복잡한 기억들 중 하나가 어떤 상황과 맞물려 툭 튀어 나올 때 말 실수, 행동 실수 등이 나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수가 나온 상황, 기억 등을 떠올려보면 왜 실수 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고, 이렇게 돌아볼 수 있기에 실수의 원인을 찾을 수 있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실수와 우울감

  1. 고작 실수 하나 때문에 자기 속으로 기어 들어가 우울하게 지낼텐가?

사실 이 질문은 내가 스스로 가장 많이 하는 행동을 역으로 표현 한 것이다. 자존감이 별로 없고, 소심하고, 열등감이 좀 많은 유형의 성격을 가진 사람은 대부분 실수에 대해 엄청 깊게, 오랫동안생각하고, 많은 후회와 감정의 상처를 받는 것 같다. 실수를 하면 에이..썅…하고 그냥 훅 넘어 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나는 속으로 끙끙 앓는다. 도대체 왜 이럴까?

돌아보면 나는 언제나 잘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일도 잘해서 칭찬받고 싶었고,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이런 욕심 때문에 실수는 더더욱 해선 안되는 사람이었다, 난. 그래서 실수를 해서는 안된다는 강박이 있었고 실수를 했을 땐 남들보다 훨씬 큰 상실감이 자리 잡는 것 같다. 실수를 그 즉시 인정하지 못하고, 자기 마음 속으로 계속 끌려가는 마음을 깊게 들여다 보면 무의식 중에 결국 앞서 얘기한 내 욕심들, ‘나는 잘해야 해. 나는 칭찬받아야 해. 사람들은 날 좋아해야 해.’등의 욕심들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나인데 이런 저런 사람으로 보여 지길 기대하는 마음, 그 마음은 곧 실제 존재하는 나를 부정하고, 상상 속의 나를 하나 만들어 놓고 그 사람으로 살길 바라는 망상 속에 비롯된 것이다. 나는 그것이 내 망상일 뿐이고,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람들

다행히 마음수련 명상을 만나 그런 나를 인정하고 버릴 수 있었지만. 버리지 못하고 계속 간직하면서 살았다면 나는 여전히 실수를 두려워하고, 어떤 사람으로 비춰 지기를 바라며 하루하루 내가 아닌 남으로 살았을 것이다. 지금에서야 말할 수 있지만 사람들은 사실 나란 인간에 큰 기대가 없다. 내가 무슨 실수를 하건(물론 순간에는 살짝 짜증이나 화가 나겠지만) 그냥 그뿐이다. 내가 뭘 하든 자기들 인생에서 나란 사람이 차지하지는 비중이 얼마 되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내가 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 사람들도 어차피 다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지 않을까?

 

아무튼!! 고작 실수 하나 때문에 자기 속으로 기어 들어가 우울하게 지낼텐가?

실수는 언제나 불현듯 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그럴 때 실수를 쿨하게 인정하고(혼날 것은 빨리 혼나고!!) 그리고 그 실수에서 재빨리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마음수련 실체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실수를 왜 하게 되었는지 되돌아보고, 원인을 찾고, 또 그 마음을 버리면 되겠지만 명상을 하지 않더라도 그런 마음에서 빨리 벗어 날수 있도록 스스로의 방법을 찾길 바란다. 세상은 내가 오늘도 실수를 하거나 말거나, 언제나 그랬듯 계속 지금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으니까. 나만 빨리 그 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최선을 다하길 바래본다.

 

 

마음수련, 이제는 실체를 알고 객관적으로 대해야 할 때

마음수련 객관적으로 대하기
마음수련은 1996년 처음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몇몇 사람들끼리 모여 한달 혹은 몇 주 간의 텀을 두고 약 일주일간 마음을 수련하는 수련모임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작고 소소하게 시작되었던 것이 2017년 현재에는 전세계 300개가 넘는 센터가 생길 만큼 꽤나 큰 규모의 명상단체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마음수련을 하고 있거나 한번이라도 경험했던 사람들이 꽤나 있을 거고 나 또한 2004년에 처음 시작해서 지금까지 십 수년을 해왔다. 나름 오랫동안 이것을 한 사람으로써 내가 생각하는 마음수련 명상의 실체에 대해 좀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굳이 이런 얘기를 내 블로그에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지만 그 동안 마음수련을 하면서 나조차도 수많은 오해와 착각을 해왔고, 주변에서 나와 같은 오해와 착각들로 인해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기 많은 사람들이 나의 글을 보고 좀 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는 마음수련을 한번이라도 경험해본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아직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될 수 있으면 안 보는게 좋을 것 같다. 쉽게 말하자면 스포 주의하라는 거다)

 
2. 마음수련 명상방법 실체
마음수련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내가 살면서 겪어온 이런저런 마음들을 모조리 다 비워내고 깨끗하고 아무것도 없는 백지와 같은 마음에서 다시 시작해서 행복하게 살자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명상 단체에서도 말하는 것과 흡사하다. 그럼 뭐가 다를까?

 

1. 명상 방법이다.

마음수련의 방법은 한가지 큰 이론을 기점으로 그 이론을 뒷받침 하기 위해 총 7~8개의 과정을 통해 방법들이 조금씩 달라진다.

1) 큰 이론
먼저 그 큰 이론에 대해 설명해보면, 내 마음을 모두 비워내 우주같은 마음이 되자, 이거다. 여기서 뜬금없이 우주가 왜 나오냐고 할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 역시 처음에 우주 얘기가 나와서 이게 뭔가 생각한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던 이 이론은 굉장히 현실적 접근이라고 생각된다. 허황된 추측이나 소수의 경험을 기반으로 형이상학적인 자리 혹은 현상 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우리가 지금 보고 겪고 또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눈으로 보고 확인 할 수 있는 부분만 이야기 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말이 어려운데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에서 가장 큰 존재는 바로 우주다. 많은 과학자가 이 우주의 비밀을 밝히려고 하고 있고 그들 또한 우주를 가장 큰 존재로 보고 있으니 말이다. 명상을 시작하는 첫 번째 단계인 1과정에서는 가장 큰 ‘우주’ 마음으로 되돌아 갈 수 있고 이 ‘우주’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강의를 한다. 이것이 마음수련이 이야기 하는 기본 이론이자 방법이다. 좁디 좁은 내 마음에서 벗어나 우주 마음이 되어 살자란 것이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고 또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다. 문제는 이 마음이 되기까지의 과정인데… 흔히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이 기본적인 이론에 대한 것은 아주 짧게 지나쳐 버리고 자기가 생각하는 마음, 자기가 경험한 마음수련이 너무 강해 각자의 이야기로 난무하다. 그래서 저마다 다 각자의 해석으로 마음수련을 설명하고 이야기한다.
한가지 팁을 알려주면 절대 사람들이 하는 그 모든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려라. 마음수련을 하면 마음이 깨끗해져서 이런 저런 인간의 마음들이 없어지고, 아기처럼 순수한 마음이 된다던지, 진짜 이 세계의 비밀이 밝혀 진다니, 인간이 기다리고 기다려온 진리가 바로 이것이다 라던지 등 그런 말을 듣게 되면 아~ 이 사람이 지금 헛소리를 하고 있구나 생각해라. 어떻게 사람 마음이 감정과 이성으로 되어 있는데 그 모든 감정과 이성들이 없어지고 자기의 해석을 주입하려고 한단 말인가. 그런 말과 행동은 매우 잘못된 태도라고 생각한다.

앞서 이야기 한대로 매우 현실적인 접근으로 우리가 눈과 귀로 확인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자. 특히 이것을 오래 한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많이 봐 왔는데 정말 해석이 난무하는 곳이기도 해서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지금 시작하는 사람들이 제발 그들의 말을 듣고 혹해서 그런가 보다 하지 말고 꼭 객관적으로 현실을 항상 직시하면서 명상을 할 것을 권하고 싶다.

2) 큰 이론을 뒷받침하는 7~8개의 과정
이렇게 큰 이론 아래에 그것을 뒷받침 해주는 것이 바로 각 과정에 맞는 마음 비우기 방법이다. 1과정에서는 자기가 살아왔던 삶에 대해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삶을 반복하여 되돌아보고 또 그것을 버리는 방법을 통해 버려서 우주마음을 자기 스스로 확인할 수 있으며, 2과정, 3과정~7과정까지 각 과정에 맞는 방법으로 모두 버렸을 때 그 비워진 마음에서 가장 크고 넓은 우주 마음을 확인하고 또 그렇게 되는 과정으로 구성 되어 있다.

실제로 버려지는 방법을 통해 자기가 스스로 자기 마음을 확인하고 느껴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스스로만 효과를 확인 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고, 명상 전에 하는 마음수련 강의는 그런 마음을 확인 할 수 있게 도와주는 행위일 뿐이다. 초창기에는 이런 강의를 통해 몇몇 강사들은 자기 생각을 주장하거나 설득하고 세뇌시키려 많이 했지만 요즘에 와서는 자기주장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아주 드라이하게 방법에 대한 설명과 마음을 잘 되돌아보고 잘 버릴 수 있도록 조언 정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3. 자기부정

2. ‘자기부정’ 이다.

사실 이것도 방법 중 하나이지만 이 자기부정이라는 것이 모든 과정에 적용 되므로 마음수련만의 큰 차이점으로 두어도 무방할 듯 하다. 자기부정이란 쉽게 말해 내 생각, 내 기억들이 전부 팩트라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의문 의심을 품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해도 좋다. 가령 어떤 사람과 어떤 상황에서 누구는 1이라고 이해하지만 어떤 사람은 2, 3 등 완전 반대의 상황으로 기억할 수도 있다. 따라서 그 상황의 사실 관계가 왜곡되고 만다. 솔직히 우리 일상에서 이런 일들이 무수히 반복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진짜 내 마음이 믿고 싶은 것만 믿어 버리고 또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만 들어버리니 기억이 왜곡되어 버리고 결국 그로 인해 생긴 오해와 착각 때문에 많은 일들이 일어나니 말이다.

따라서 내 마음을 들여다 보고 그것을 또 비워 내려면 철저하게 내 입장에서 볼 것이 아니라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관점, 그리고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을 수 있다는 의문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기억들, 혹은 내 마음들을 철저하게 부정하고 그 마음들을 천천히 들여다 보고, 그 마음들을 버려 나가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내 마음들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봐야 한다는 것과 같다. 여기서 말하는 객관적 입장이라는 것이 바로 우주와 같은 큰 마음으로 내 마음을 봐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오류를 범하고 있고 착각하고 있다. 바로 상대적인 자기부정을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부작용을 조심해야 한다. 자기부정을 하는 이유는 내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출발해 객관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인데 상대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부정을 대입시켜서 그 사람의 감정에 깊은 상처를 때문이다. 진짜 이런 경우를 너무나 많이 봐왔기에 아무 때나 자기부정을 걸고 넘어지는 사람을 조심하면 좋겠다.

한 예로 어떤 사람들이 어떤 사연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과정에서 그 사람을 향해 당신의 생각이 잘못 됐고 당신은 틀렸고, 당신은 맞지 않다란 식으로 이야기 해버리면 그 말을 듣고 있는 사람이 과연 그 충고를 받아 들일 수 있냐는 것이다. 자기부정이라는 방법으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향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건 정말 폭력이다. 철저히 나에 대해서만! 내가 객관적인 시각으로 자기부정을 하는 것이지 절대 상대에게 이 이론으로 대하면 안된다. 그건 정말 멍청한 짓이니 절대 그런 말을 하거나 그런 생각을 하지 말자.

마음수련을 하다 보면 이런 딜레마가 엄청 자주 온다. 내가 힘들고 괴로울 때 도움을 주고자 하여 어떤 이는 자기부정을 해야 한다고 말하거나 다 내 잘못이니 내가 죽일 놈이다, 내가 정말 못돼 쳐먹은 놈이다라고 부정만 하다 끝을 내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부정만 하고 끝낼 것 같으면 아예 대화를 시작조차 하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자기부정은 명상 중에 자기 마음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기 위함이지 결코 내 삶의 모든 행동과 생각들을 자기부정의 함정으로 끌고 와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는 상황이 반복 된다면 그 사람은 엄청난 자괴감, 자책감, 죄책감 등에 사로잡혀 더 큰 감정의 터널로 들어가 버리게 될 것이다. 실제로 내가 많이 겪었고 또 많이 봐왔기 때문에 말할 수 있다. 어찌되었던 그런 자기부정이라는 것 때문에 힘들거나 괴로운 상황이 온다면 빨리 그것을 벗어나 객관적인 입장에서 내 마음을 들여다 보고 방법대로 비워내는 것에만 집중해라.

 

 

3. 비워진 만큼만 나타나게 되는 것이 행동의 변화이다.

여기서 비워진 만큼이라고 하는 전제를 깐 이유는 행동변화에 대한 말이 많기 때문이다. 이 행동변화로 인해 벌어지는 오해와 착각들이 마음수련을 특히 오래 한 사람일수록 많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이것은 매우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잣대가 필요하다고 본다. 흔히들 쉽게 하는 말이 “마음수련 하면 다 좋아진다”, “마음수련이 그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 “마음수련만 하면 무조건 바뀌게 되어 있다”, “어떻게 마음수련을 했는데 그렇게 행동할 수 있냐? 등 이다. 마음수련만 하면 행동변화가 반드시 올 것이란 기대심리 때문에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진다. 분명히 전제는 비워진 만큼 나타날 수 있는 행동 변화 인데 말이다.

가령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오랫동안 괴롭혔던 ‘집착’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치자. 뭐 사랑, 일, 돈, 물건 등 여러 가지에 대한 집착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내 물건에 대한 집착을 예로 들어보겠다. 내가 산 물건 혹은 내가 가지고 있는 내 물건들에 대한 집착이 센 사람이 집착이라는 마음을 계속 찾아내어 버리다 보면 어느새 이전과는 다르게 물건에 대한 마음이 없어진다. 잃어버렸거나 혹은 남들이 함부로 쓴다거나 해도 별 생각이 없어진다. 아주 사소한 것부터 이렇게 마음이 조금씩 비워지다 보면 실제로 내 물건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 마음이 버려진 만큼 집착이 없어지는 거지 한번 버려 봤다고 해서 그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내 마음 안에 집착이라는 마음이 엄청 쌓여 있는데 그걸 오랫동안 다 버렸다면 몰라도 한번 버려봤다고 해서 그 마음이 완전히 없어 질 수 없기 때문이다. (경험상 조금이라도 비워진 그 순간만큼은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긴 하다. 기분도 너무 좋고)

그렇게 한번 버려봤고 비워봤다고 해서 갑자기 마음이 뿅~ 하고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다거나 그런 마음상태를 절대 기대해서는 안 된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제대로 비워나가는 것이 중요하지 마음 한번 비우고 곧바로 효과를 기대하는 건 너무 억지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내 행동의 변화가 전과 달리 크게 변화가 없다고 해서 ‘마음수련이 나만 잘 안 된다’고 생각하거나 ‘저 사람은 명상을 그렇게 오래 했는데 어떻게 배려하는 마음이 없을까’ 하는 등의 생각은 전혀 할 필요가 없다. 나는 물론 상대 또한 자기가 실제로 비워진 만큼, 딱 그것만큼만 행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나를 탓하거나 남을 시비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뜻이다.

대체로 부정적인 사람이 그 마음을 바꾸기가 힘이 든다. 어렸을 때부터 형성된 성격이 하루 아침에 바뀌기가 힘든 것처럼 마음수련을 오래 해도 그 마음의 뿌리가 아주 깊으면 계속 부정적인 마음, 행동이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이것을 오래 한 사람일수록 자기 행동과 자기 마음들을 쉽게 캐치 해낼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자기 상태를 잘 파악해서 그런 행동을 고치려고 하기도 한다.

이처럼 행동의 변화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착한 사람, 웃는 사람, 배려하고, 항상 겸손하고, 조용하고, 열심히 하는 등의 기대는 되도록이면 하지 않는 게 좋다. 이런 기대 없이 그냥 방법대로 계속 하다 보면 반드시 비워진 만큼 나도 모르게 자연스레 예전에 내가 아닌 그냥 자연스러운 모습과 행동으로 나타나니 너무 조바심 가질 필요도 없고, 또 바뀌지 않는 상대를 보고 시비 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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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마음수련의 핵심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의 모습들을 버려나가는 것이다. 나를 비롯해 몇몇의 사람들 소위 오래 한 사람일수록 매너리즘에 빠져 남들에게 마음은 이거다, 마음은 이렇게 먹어야 한다, 마음은 이렇게 써야 한다 등으로 가르치려고 하고, 주장하고, 설득하고, 강요하는 사람이 있다. 정말 나를 포함한 그 사람들은 진짜 반성해야 한다. 절대 남을 가르쳐서도 안되고, 남을 설득하려 해서도 안 된다. 오로지 자기 마음에만 집중하고, 되돌아보고, 비워내야지 어설프게 마음 조금 비워 봤다고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면 절대 안 된다. 그런 행동이 이것을 시작하려던 사람들에게 오히려 더 큰 기대심리와 오해, 착각을 불러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절대 남 얘기 잘 하는 사람 말을 믿지 않도록 하자.)

마음수련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스스로 하고 또 자기 스스로 확인하고, 그런 자기가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 목적이자 목표이고 실체이다. 어떤 판타지와 같은 그런 마음 상태를 기대했다면 그 기대부터 박살내고 시작하시기를 권한다. 혹여 마음수련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 중에 이런 사람이 있다고 이것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자. 자기 마음은 자기가 직접 해결 해야하고, 또 객관적인 시각으로 자기 상태를 직시해야 하며, 특히 남의 모습, 행동에 일체 신경 쓰지 않아야 한다.

마음수련은 요술방망이도, 마법램프도 아니다. 그저 내 삶을 되돌아보고 그것을 비워내는 명상방법의 하나일 뿐이다. 자기식대로 해석하여 이렇더라 단정 짓지 말고,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과 태도로 이 방법을 대하고, 최대한 자기 생각 없이 방법에만 집중하는 것이 마음수련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수련 후기 “부정적인 마음의 실체? 어쩌라고!”

지드래곤 삐딱하게-부정적 마음의 실체

“넌 왜 그렇게 부정적이야?”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해?”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고… 응?”

살면서 주변에서 많이 들리는 말이다. 세상을 삐딱하게 비꼬아 본대나 어쩐대나.. 그냥 단지 그 상황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말했을 뿐인데.. 눈치 없이 분위기 파악 못 하는 건.. 정말.. 고질병 수준인 것 같다. 삐딱하게 봐 지는걸 어떡하란 말이야! 에이… 진짜.. (지드래곤 “삐딱하게” m/v도 1억뷰 넘었던데… 참내..)

 

신중한 마음 부정적 마음수련

사실 매사 신중히 판단하는 성격이 좀 있어서 몇 가지 점검 차원에 말한다고 나름 변명할테지만 어찌됐든 내 행동과 말로 인해 상황을 불편하게 만들거나, 혹은 상대가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은 좀 신경이 쓰인다. 의도가 상대를 탓하거나 상황이 정말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걱정되거나 우려되는 부분을 점검하는 차원에 내뱉는 말인데 상대가 그 말을 듣고 기분이 나빴다면.. 분명 그건 내 잘못이 맞다. 굉장히 이중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렇다. 나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부정적 실체와 긍정적 마음의 실체

근데 정말 진짜로 바뀌어야 될 것은 무엇일까? 대체 부정과 긍정의 실체는 뭐냐고~~ 매너 있는 행동? 상냥한 말투? 방긋 웃는 표정? 매사 희망적인 사고? 뭐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이 바뀌는 것일까? 꼭 그렇게 바뀌어야 하나? 그럼 세상 사람 전부다 다 그렇게 누구나 방긋 웃고 희망찬 이야기만 하고, 너나 할 것 없이 상냥한 말투에.. 그 어떠한 논쟁, 언쟁 없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맞는 것인가? 정말 바뀌어야 할 것은 매너와 말투가 아니라 사람과 상대를 대하는 내 마음의 태도부터 바뀌어야 되지 않을까? 무조건적인 착한 코스프레가 아니라 상대와 상황에 대해서 미워하거나 싫어하거나 귀찮아 하는 감정이 없이, 상황 그대로를 바라보고, 순수하게 그 마음으로만 대하는 게 오히려 상황을 직시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마음수련 부정적 마음의 실체

사실 마음수련 명상을 하면서도 내 부정적인 마음은 롤러코스터처럼 들쑥날쑥 했다. 마음수련 하면 다 좋아지고 밝아지고 행복해 지고 머.. 꼭 그런 것은 정말 아니다. 그때그때마다의 감정은 언제나 존재 한다. 어떤 날은 좋았다가, 또 어떤 날은 답답하기도 하고, 하기 싫기도 하고, 귀찮아 하고… 그런 나에게 내가 내린 결론은 “내 실체는 원래 부정적인 놈이니까..그냥 내가 부정적인 놈이란 것을 인정을 해버렸다. 아니야라고 더 이상 부정하는 것도 웃기니깐.. 평소 마음수련 명상을 같이 하고 있는 주변 사람들은 내게 “바뀌려고 노력이라도 좀 해야 되는 거 아니니?”, “어떻게 너는 너만 생각하냐”라고 하는데… 사실… 나도 바뀌고 싶다.. 진짜 바뀌고 싶고.. 바뀌려고 노력도 해보고 하는데.. 정말 어느덧 눈치 없이 부정적인 말이 툭 튀어 나오곤 했다. 나도 모르게.. 말이다. 아니… 나는 바뀌려고 노력을 많이 안 했나? 아… 정말 나는 바뀔 수 가 없는 걸까?

마음수련으로 바뀔 수 있을까

솔직히… 나는 부정적인 내가 싫고, 좀 둥글둥글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나를 마주 할 때면, 그런 나에 대한 실망감과 자책을 많이 하는 편인데.. 한숨 쉬면서.. 요 근래에는 뭔가 그런 생각에 한계치가 오는 것 같으면서..자책도 할만큼 하다보니… 진짜 이런 내가 진절머리가 나는 거였다. 왜 맨날 나는 이런 상황이 반복되지? 정말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 아닌지… 너무 화가 나고 또 두렵기도 하고.. 그쯤 되니까… 명상센터에서 그런 마음을 좀 제대로 되돌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서야 말이다. 명상을 통해 되돌아 보니 나는 무조건 내가 원하는 상황대로 되지 않으면 답답해 하고, 참 힘들어 하는 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입장을 좀 바꿔서 생각해 보니까.. 정말 나는 너무 이기적이었던 것 같다. 욕심도 참 많은 것 같고.. 다 내 뜻대로 잘되었으면 하고.. 언제나.. 바라기만 바라고..

기대하는 마음의 실체

어쨌든 그런 마음들을 계속 보면서 또 비워 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에이씨… 모르겠다… 그냥 살자… 더 이상 괴로워 말고 그냥 내가 바라는 욕심과 내가 원하는 대로만 사는 건 암만 생각해봐도 말이 안 되는 거니까.. 그냥 받아 들이는 거다. 걍 좀..편안하게… 안되면 안 되는 그 정도… 궁금하면..솔직하게 그 부분이 이러이러한 걱정이 좀 든다고 솔직하게 좀 의사표현도 하고(오해가 생기지 않게) 좀 그렇게 가볍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마음 조차 버리면서.. 잘 버려지면 또 내가 그리는 이상향의 삶을 살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함께 버리니까 뭐가 될 리가 있나… 정말 끝까지 자기밖에 모르는 놈이다 나는.

마음수련으로 생각전환

암튼 생각의 전환을 하기로 딱 마음이 먹어졌던 것은.. 그만큼 나를 되돌아 봤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것 같다.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힘든 것도 아니고..그냥 마음 한번 탁 돌려 먹는건데.. 그게 이렇게 오래 걸리고 돌고 돌아 오는 길이었지만…..지금이라도 이렇게 쿨해지니까 한결 홀가분한 것 같다. 그래..너~~~무 진지해 지지 말자. 오늘 사나 내일 사나… 좀 가볍게 살아보자~ 늘 전쟁터에 있는 듯 하지만 부정이든 긍정이든….제발 자기만 생각하는 그 욕심 좀 내려 놓고…좀 가볍게..살아 가는거다~ 문제가 생기면 그때 다시 해결해보면 되지..미리 겁먹지 말고..좀 지금 하는 일이나 잘해보자~~ 부정적인 마음의 실체? 내 마음을 조금만 진지하게 되돌아 보면 금방 알 수 있고, 또 생각의 전환이 올 수 있으니까… 암튼 힘내 보자! 파이팅~

 

마음수련 대충 했다간 사이비 소리 듣는다

“너는 마음수련 했다는 애가 행동이 그게 뭐냐?” “야! 너 마음수련 한다면서 왜 이렇게 꽉 막혔어. 마음수련 좀 더 해라” 내가 종종 듣던 말이다. 친구들, 직장, 집에서… 나는 당당히 마음수련을 했다고 마음수련 참~ 좋다고 사람들에게 늘 말하고 다녔다. 실제로 정말 힘들었던 때에 마음수련을 통해 극복을 했기 때문이다. 내 입장에선 정말 마음수련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그만큼 나는 마음수련을 참 좋아한다. 하지만 마음수련을 해보지 않았던 사람에게 “너 마음수련 좀 더 해라. 으이구…” 라는 말을 들었던 것이 큰 충격이었다. 집에 돌아 오는 내내 생각이 났다. ‘내가 대체 어땠길래 이런 소리를 들은 거지? 내가 정말 일반적이지 않나?’ 계속 생각을 해보지만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생각이 계속 맴돌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마음수련하고 나는 뭐가 바뀐거지?’ ‘사람들은 마음수련을 했다고 하는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는 걸까?’‘나는 정말 바뀐 게 하나도 없는 걸까?’ 대체 내가 마음수련을 그 동안 어떻게 하고 있었는지 너무 궁금해졌다. 그래서 차근차근 그 동안 내가 했던 마음수련을 돌아보기로 마음을 먹고 천천히 그 실체를 파헤쳤는데 역시나 돌아보면 볼수록 충격의 연속이었다.

 

마음수련으로 나를 돌아보기

 

첫째, 나는 솔직히 나 스스로가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힘든 순간이나 억울하거나 답답한 상황이 오면 그 상황 속에 빠져서 그 감정 속으로 아주 깊게 들어가는 편이었다고 일상의 감정을 되찾는 시간이 다소 오래 거렸다. 그러나 마음수련을 하고 난 후 그 상황이 분명 존재는 하지만 예전처럼 내 자신이 동굴 속으로 들어가 버리지는 않는다. 뭐랄까, 그냥 훅 털어버리는 느낌이랄까? 의식의 전환이 빠르게 되는 느낌이 있었다. 분명 이런 마음의 변화는 겉으로 들어나지 않는 내면의 변화이기에 나는 스스로 내 자신이 엄청나게 바뀌었지만 남들 보기에는 별로 티가 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것이 정말 큰 착각이었다. 나는 내 마음이 좀 편해졌다고 예전의 그런 나는 완전히 없어졌다고 단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렇지 않다는 착각. 없어졌다는 착각. 실제로는 그렇게 완벽하지도 않은데 말이다. 그렇게 조금 버려졌다고 내가 바라던 그런 쿨하고 멋진 내가 되었다고 믿고 있을 뿐. 나는 여전히 그 찌질한 나였던 것이다. 믿고 싶은걸 믿어버렸던 나의 오류는 내 스스로 바라는 내가 있었기 때문에 더 깊게 돌아보질 못하고 더 버리지 못했던 것이었다. 정말 대단한 착각이 아닌가… 정말 어이가 없는 상황이다.

마음수련으로 나를 정확히 알기

 

둘째, 나는 내 행동이 너무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소위 마음수련에서 말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걸림이나 사고의 틀이 없다는 것을 그냥 믿어 버렸다. 예를 들어 이런 저런 상황에서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하지만 나는 틀이 없다는 핑계로 아무렇게나 행동을 하곤 했던 것이다. 마음이 완전히 버려지지 않은 채로 말이다. 좋아 보이는 것을 그냥 마음에 담아 버린 듯. 마치 그렇게 되어 버린 냥. ‘이 상황에서 꼭 이렇게 하는 게 그게 틀이지. 왜 그래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며 했던 수많은 행동들이 하나 둘 돌아봐졌는데… 아… 부끄럽다. 난 여전히 상대방은 의식하지 않은 채 내 마음만, 내 생각만 중요하게 생각했구나. 이거 정말 수준미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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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나는 마음수련에서 해보라고 하는 방법대로 제대로 끝까지 해보지 않았다.

꼼꼼히 나를 돌아보고 원인이던 근본적인 마음부터 천천히 제대로 버렸어야 했는데 지금 닥친 내 힘든 마음을 버리기에 급급했었다. 그렇기에 제대로 나를 돌아보지도 못했고 진짜 버려져야 할 마음을 버리지도 못했으며, 대충 수박 겉 핥기 식으로 마음수련을 해왔었다. 그러니 전혀 바뀌지 않고 그대로 일 수 밖에… 나는 마음수련을 통해 조금은 비워졌고 조금은 변화됐다고 생각하는 자신만만한 마음에 덮여 버린 채, 여전히 남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 중심적으로 지내던 예전의 그 나로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대체 왜 이런 결과가 생긴 걸까? 나는 대체 마음수련을 어떻게 했길래 여전히 이런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는 걸까? 순간 남들한테는 마음수련 좋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마음수련을 하면 정말 좋아진다고 말하고 다녔던 지난 날이 너무 부끄럽고 쪽 팔리고 후회가 밀려왔다. ‘이대로 계속 착각 속에 살았다가는 정말 사이비 소리까지도 듣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찔해졌다.

 

마음수련으로 달라진 시선

마음수련 절대 대충대충 하지 말아야겠다. 대충 했다간 사이비소리 듣기 십상이구나. 난 1단계부터 다시 마음수련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열흘 정도 지났던가, 같은 센터 다니던 학교 선생님이 “너 요즘 얼굴 되게 좋다? 되게 편안해 보여.“ 라고 했다. 응? 내가 좀 편해졌나? 실제로 좀 편안해 진 것 같기도 한데… 암튼 계속 열심히 했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명상을 하면서 한가지 중점적으로 생각 했던 것은 ‘절대 바램을 갖고 하지 말자’ 이거 하나였다. 그전에는 이런 내가 싫고, 이런 마음들이 날 괴롭히고 있으니까 여기서 벗어나고 싶고, 이런 내가 되어야지 등의 바램으로 했다면, 요 며칠 동안은 그런 바램을 내려 놓고 정말 순수하게 계속 나를 되돌아 보는 것에 초점을 뒀다. 떠오르는 모든 마음들을 오직 방법대로 버리는 것에만 집중했다. 마음을 빼기 하는 것이 마음수련 인데 그 동안 나는 또 다른 이상향의 나를 그려놓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 그 바램을 가진 채로 마음을 버렸다. 그러니 뭐가 되었으랴. 그 욕심만 가득 찬 상태로 조금 버려 졌다고 살짝 비워진 그 달콤한 마음에 빠져 완전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었으니 가짜인 “내”가 되어 있었을 수 밖에…

 

그 동안 나는 참 멀고도 멀리 돌아 온 것 같다. 변화를 기대하는 내가 있어서는 결코 아무것도 될 수 없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 사람들에게 마음수련이 좋다고 떠들어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생각, 내 기준, 내 가치관이 중요 한 것이 아니라, 말없이 상대를 배려하고 상대가 느끼기에 편안한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 진정 중요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가는 길이다. 인정하는 것” “그 다음 먼 길은 가슴에서 발까지 걸리는 길이다. 행동 하는 것”라는 말이 있다. 상대가 웃을 때 같이 웃고 상대가 슬플 때 같이 슬퍼하고 상대가 함께 있고 싶어 할 때 말없이 함께 있어 주는 것. 작고 사소한 행동들이 당연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드는 그 마음이 결국 변화된 마음이 아닐까? 내 마음이 없어져 오로지 세상과 수많은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그 마음. 그것이 이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을 위한 마음수련의 진짜 메시지인 것 같다. 이것이 진짜 마음수련의 실체다.

마음수련하고 달라진 나

‘아름답다’라는 말과 마음의 실체

[아름답다]
우리는 살면서 ‘아름답다’ 라는 표현을
자주 보고 듣고 말하곤 한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풍경을 볼 때

 

 

 

 

 

 

 

 

웅장하고 섬세한 건축물 볼 때

 

 

 

 

 

 

 

 

 

감동의 장면을 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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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격의 순간을 볼 때
감동의 장면

 

 

 

 

 

 

 

 

 

예쁜 여자를 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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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이 공통된 단어, “아름답다”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게 된다.

과연 이 “아름답다”라는 말의 실체는 뭘까?

네이버사전에서 찾아본 아름답다의 뜻은
‘보이는 대상이나 음향, 목소리 따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눈과 귀에 즐거움과 만족을 줄 만하다.
하는 일이나 마음씨 따위가 훌륭하고 갸륵한 데가 있다.’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아름’은 두 팔로 껴안을 수 있는 길이나 양의 단위를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두 팔로 상대방을 껴안아 포근하게 감쌀 수 있는 넉넉한 마음
가장 크고 넓고 깊은 마음
우주 같은 마음을 아름이라고 한단다.
정말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그냥 예쁠 때,
자연의 웅장함을 느낄 때,
사랑이라는 감정이 느껴질 때,
이럴 때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아름답다”라고 생각했지
이런 심오한 뜻이 있을 줄이야.

과연 아름답다의 실체를 명확히 알고 쓰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아름답다에 대한 다소 생소한 해석이지만
우리가 흔히 쓰고 있던 아름답다라는 말의 깊이와 조상의 지혜가 느껴진다.

자 이제 아름다운 순간을 한번 상상해 보도록 하자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오롯이 그 풍경에 대한 경이로움만 느껴진다
아름다운 사랑을 생각하면 오로지 그 순간만이 느껴지고
아름다운 희생을 보면 오직 그 감동만이 생각나며
아름다운 사람을 보면 오롯이 그 사람만 바라보게 된다
그 순간에 말이다

우리가 마음으로 아름답다라고 느끼는 마음의 실체는
그 순간 이렇다 저렇다 하는 마음은 온데간데 없고
오직 그 순간의 아름다움에만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내 마음이 아름다움에 잡아 먹히듯이

내 마음 속은 초초로 수만가지의 생각이 왔다갔다한다
하지만 아름다움을 느끼는 그 순간이 있다면
그때가 유일하게 내 마음이 쉬고 있는 때가 아닐까

아름답다를 느끼고 있을 때
오로지 그 감정, 그 마음에만 집중하게 되고
수만가지 생각으로 가득 찬 마음이 잠시나마 쉴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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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간 드는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답답하고
한숨쉬고
모르겠고
하기싫고
쉬고싶고
막막할때

조용히 내 마음을 비워보자
내 마음을 아름답게 만들어 보자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도록
어떤 것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렇게 내 마음을 그렇게 비워보자
아름답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