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수련] 힘이 든다는 말의 실체

 

진짜 마음수련 실체는 수면

 

‘나 요즘 너무 힘들어’

‘사는게 왜 이리 힘드냐’

‘하아…… 참 힘들다’

그러고 보니 힘들다는 말을 참 많이도 하고 사는 것 같다. 어릴 때도 그랬던 것 같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일상에서 가끔씩 부딪힘이 생길 때 습관처럼 ‘힘들다’라는 말을 한다. “힘들다. 힘드네 정말. 힘들어 죽겠네.” 이런 말들을 나는 왜 습관처럼 내 뱉는 걸까? 아니 말도 그렇지만 나는 왜 이 힘든 상황이 반복되는 걸까? “힘이 든다”는 말의 실체는 도대체 뭘까?

가만히 생각해 보자. 도대체 언제 이런 말들을 하게 되고, 언제 힘들다는 마음을 느끼게 되는건지. 어릴 때부터 떠올려 보자. 힘든 상황들을.

아! 숙제 할 때!!

숙제 할 때 항상 힘들었던 것 같다. ‘숙제는 일단 친구들이랑 놀고 와서 해야지’라고 생각하고 실컷 놀고 저녁 늦게 돌아와서 밥을 먹을 때면 엄마가 꼭 한마디 하신다.

“니 숙제 다 했나?”

이 말 한마디에 마음이 힘들어지기 시작한 것 같다. 하기 싫은 숙제를 할 생각에 마음이 턱 막히고 앞으로 숙제를 해야 하는 상황이 괴롭고 숙제를 안하고 다음날 학교에 갔을 때 선생님한테 혼날 텐데.. 그 상황이 너무 싫고 뭐랄까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했다고나 할까? 너무나 간절했기에 갑자기 내 몸 어딘가가 심하게 아파서 도저히 숙제를 할 수 없는 상황이 왔으면 좋겠고 길가다가 갑자기 사고라도 나면 숙제 안해도 될 텐데…… 생각했던 것 같다.

마음수련에 도움이 되는 활동과 출근길의 실체

 

그러고보니 어릴 때도 그 나이에 맞는 힘든 상황이 많았던 것 같다. 선생님한테 혼날 때, 공부가 하기 싫을 때, 숙제가 엄청 많을 때, 친구랑 싸울 때. 그런 상황은 마치 마음에서 뭔가 쉽게 넘어가지 못하고 묵직한 마음이 확 들어오고 그 직후 바로 힘들다고 내뱉게 된다.
학창시절에는 공부가 힘들었고, 대학 때는 친구관계 때문에 힘들었고, 군대에서는 그냥 그 자체로 힘들었고 복학을 하고 졸업을 하고 사회에 갔을 때도 각기 다른 이유로 힘들었다.
사소한 것부터 정말 심각했던 것까지 힘들었던 상황이 수없이 많았었고, 그럴 때 마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 뱉으며 한발 내 딛는 것 조차 너무 힘겨워 했었던 것 같다. 어깨는 축 처지고 고개는 바닥을 향하고, 무슨 상황이 스쳐가도 어떤 감흥도 없이 그저 정말 힘 빠진 채로. 겨우 몸을 겨눌 정도.

맥주의 실체는 마음수련을 위한 것

 

힘이라는 것은 원래 육체적으로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릴 때나 팔씨름 할 때 필요한 것이지만 마음적으로 보면 마음속 에서 마음이 무겁게 느껴지면 힘이 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결국 힘이 든다는 말의 실체는 내가 가지고 있는 힘(=마음)을 평소보다 더 많이 써야 할 때 혹은 내가 가지고 있는 힘(=마음)이 소진되었 을 때 힘이 든다고 말을 하는 것 같다. 육체의 힘과 내면의 힘.

내면의 힘이 약할수록 힘이 든다 라는 말을 더 자주 하는 것 같고 내면의 힘이 강할수록 힘이 든다 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잘 되지 않을 때, 내가 원하고 바라는 상황이 오지 않을 때 혹은 죽을 만큼 열심히 했는데 쉬지도 못하고 또 해야만 할 때, 그럴 때 힘이 든다는 마음이 올라오게 되고 힘이 든다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내 마음수련의 실체는 면벽수행

 

평소 그냥 습관처럼 그냥 했던 말인데 오늘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힘이 든다는 말의 실체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는 것 같다. 힘이 드는 상황을 세세하게 묘사하지 않더라도 힘이 든다는 것은 내 내면의 마음에서 그것을 견디지 못하거나 아등바등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무겁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고, 그렇게 마음이 무거우면 실제 몸도 무겁게 느껴지니 힘이 든다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 반면에 우리는 누군가의 마음이 무거워 보이고, 힘겨워 할 때면 의례히 건네는 말이 바로 “힘내세요~ 힘내시고요~~ 힘내~~!!” 이다. 그것도 왜 그런 걸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상대가 힘들어 할 때 나는 충분히 그 마음이 어떨지 공감하고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힘을 내라고 말을 건네게 된다. 또 우리는 마음의 짐이 무겁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에 그것을 떨쳐 버리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기 때문에 “힘을 내~” 라고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마음수련의 실체는 어두운 문은 지나가는 과정

 

근데 사실 힘들어, 그리고 힘내라는 표현은 우리가 살면서 그냥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지 누가 가르쳐 준 적은 없다.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고, 알려주지 않았지만 정말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쓰는 것 같다. 누구나 알고 있는 말. 누구나 똑같이 겪는 상황. 신기하게도 ‘사람의 마음은 정말 똑같구나’를 알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나는 마음이 너무 무겁고 힘이 들어서 마음수련 명상을 시작했다. 명상을 하면서 힘들어 했던 내 모습을 되돌아보면 언제나 똑같았다. 혼자 애가 타고 혼자 애 쓰고 혼자 그렇게 답답해 하면서 남 탓, 세상 탓 하면서 온갖 부정적인 마음 덩어리를 짊어 지고 있으니 마음이 무겁고 힘겨웠던 것이다. 그 짐을 누군가와 함께 나눠 들었으면 힘이 안들었을텐데, 그 짐을 내려 놓았다면 무겁게 들 필요가 없었을 텐데. 참 멍청하게 살아왔던 거 같다. 정말 이렇게 무거운 것을 끝까지 가지고 어떻게 살았을까 싶다.

마음수련의 실체는 하늘처럼 되는 것

 

진짜 이 마음수련 명상을 만난 것은 내 인생 통틀어서 정말로 다행 중에 다행이고, 행운 중 행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이 마음수련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 마음의 무게를 버티다 버티다 결국 견디지 못하고 깔려 죽었을 것이다. 무겁다고 난리 치면서 말이다. 괴로움과 답답한 그 무거운 마음의 짐들을 다 빼내고, 또 그 짐들을 혼자 지려 하지 않고 주위 사람들과 함께 나눠 들게 되었으니 지금은 너무 가볍다. 쉽게 말해서 힘든 마음이 올라오면 그것을 꺼내어 누군가에게 털어 놓을 수 있고, 또 그것을 나눠 들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함께 하자고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고, 그리고 끝까지 갖고 있던 욕심과 집착을 이제 그만 포기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으니 너무 다행이지 않은가. 마음수련 실체의 힘은 바로 거기서 나오는 것 같다. 변화의 시작은 나를 짓누르고 있던 그 무거운 마음을 내려 놓으면서부터 이고, 그 마음을 없애고 나면 홀가분해지고 가벼워지고 표정도 좋아지고 기분이 좋아져서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구나 힘든 상황은 오기 마련이다. 힘들어 할 때만큼 마음이 괴로울 수가 없다. 그 무거운 마음들 다 빼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살자. 내가 힘을 내는 방법은 무거운 짐을 없애거나 그 무거운 짐을 내려 놓거나 그 짐을 함께 나눠 드는 것. 반드시 명심해야겠다.

마음수련해서 더 이상해졌다는 말 들어본 적 있나요?

 

 

“마음수련 했으면서 왜 그래?”

“마음수련 했다면서 어떻게 변한 게 없니?”

“마음수련해서 너 더 이상해.”

 

사진 (2)
좋아지려고 하다가 나빠진 격

 

위의 질문은 마음수련 명상을 오래 한 내가 주변에서 쉽게 듣는 말이고, 나 스스로도 문득 드는 생각이다.

 

 

분명 처음엔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었다.


행동도, 마음도 이전과는 정말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 만큼 내 인생에서 과히 황금빛이라 생각할 만큼 좋았던 적이 분명 있었다. 표정은 늘 밝았고, 어릴 적 새 신발을 신고 뛰어다니던 시절처럼 마음도 너무 가벼웠다. 행복하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너무 신기했고 매일 매일이 참 좋았었다. 그러다 한해 두해 지나면서,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내 표정은 점점 어두워지고 몸은 천근만근 무겁고 말수도 줄고 한숨은 늘었다.
매너리즘에 빠진 걸까? 그 당시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상황과 감정들이 나를 서서히 우울함 속으로 몰고 가는 것 같았다.

마음수련을 계속 하고 있었지만 그런 상황들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내가 비정상일까?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내가 정말 하나도 안 바뀐 건가? 내가 나를 봐도 더 이상해 진 것만 같았다.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그런 보통사람들과는 확실히 달랐던 것 같았다. 자기 주장이 더 심해졌고, 더 남을 배려하지 않고, 오직 내 생각만이 옳다고만 믿어버린 채, 그 속에서 한걸음도 못 나오는 신세 같았다.

 

사진 (7)
매일매일 이렇게 맑았는데

 

분명 그랬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배려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늘 배려하려고 노력했다. 그게 좋으니까, 그래야 하니까, 그래서 난 항상 배려를 했다.
근데 나만 유독 배려하는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은 적당히 자기 것 챙기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 모습들에 나는 점점 왜 나만 배려를 하지, 아무도 몰라주는데. 남들은 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데 나만 이럴 필요 있나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이제 나만 배려하고, 내가 손해보는 짓은 안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다.
나도 저들처럼 똑같이 할거야. 나보고 뭐라 하기만 해봐 하면서 말이다. 결국 나는 점점 내가 손해보는 것은 안하려고 하고 점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지내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듣게 되는 말이 바로 마음수련 하는데 어떻게 그래?”, “마음수련 하면 그렇게 이기적으로 되는 거니?” 이다.
분명 나도 남들처럼 똑같이 자기 실속 챙기고 하고 싶은 대로 한 것인데 자기들은 그렇게 하면서 왜 나한테만 그러지? 하면서 스스로를 정당화했다.

 

사진 (5)
막막한 회색벽에 갖힌 듯 답답하다

 

또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마음이 좋을 때는 참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누가 보든 말든 최선을 다하고 좀더 성실하게, 좀더 성의 있게 노력했다. 그런데 일이란 게 잘 해서 결과가 좋을 때도 있고, 잘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을 때도 있지 않은가.

근데 항상 결과만 보고 제대로 안했다고, 지적 받거나 혼나면 정말 너무 싫은 거다. 최선을 다했는데, 정말 남들보다 더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왜 결과가 안좋아서 이렇게 인정도 못 받고 찬밥 신세가 되는 것 같은지.

결국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열심히 해봐야 뭐해. 어차피 잘 안되는데. 나도 남들처럼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내 실속 챙기고 해야겠다. 그렇게 마음 먹게 된다. 그러다 결국 또 듣게 되는 소리는 너 마음수련해서 더 이상해진 거 알아?”, “어떻게 너는 열심히도 안하고 니 실속만 챙기니?” 이다. 아닌데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닌데. 그래도 열심히 한적은 있었는데. 결국 후회하고, 속상해 하고 답답해 하게 된다.

 

이것 말고도 더 많은 상황들이 있다.


상대에게 말을 할 때나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에서 말이다.
왠지 혼자 고립되어 있는 것 같고 표정은 늘 어둡고 모음 너무 무겁고 한숨만 푹푹 쉬게 되고. 마음수련 했는데 더 힘들어 졌다고 온갖 투정과 부정적인 생각들로 어느덧 가득 차게 된다.

그런데 이 상황들을 잘 되돌아보면 정말 어이가 없다.
나는 누구를 위해 배려하고, 누구를 위해 열심히 하고 그랬던 것일까?
내가 했던 행동과 말들이 정말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만약 내가 아닌 남들을 위한 배려였다면 섭섭함과 서운함이 있었을까?
내가 일을 할 때 오직 결과만을 생각하고 열심히 했다면 그렇게 혼나거나 지적 받는 일이 있었을까?

냉정하게 말해서 나는 상대를 배려 하는 것도, 열심히 했던 것도 모두 내 기분이 좋으니까, 그렇게 착하게 열심히 하면 내가 좋으니까, 오직 나를 위해서만 했던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보며 저들은 왜 자기 밖에 모를까라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그렇게 살고 있었다. 내가 제일 나만을 위해서 살았으니 돌아오는 말도 그런 부정적인 말 뿐이었던 것이다.

 

사진 (4)
나의 부정적인 생각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정말 대단한 착각 속에 살았다.


조금만 돌아보면 어떻게 이런 착각을 하면서 살았는지 답이 나온다.
분명히 나는 마음수련해서 조금 비웠다고 다 버린 줄 착각하며, 그 기분 좋은 마음에 취해서 살아간 것이다.

내 마음속에는 아직 깊고도 깊은 철저히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가 제일 맞다 하는 그 부정적인 마음의 뿌리가 남아있는데, 조금 버렸다고, 조금 비워졌다고 착각해서 다 끝난 줄 안 것이다.
사실은 아직 있는데. 난 그렇게 아직 내 마음이 있음에도 있는지 모르고 그렇게 대충, 설렁설렁 마음수련을 하다가 이지경까지 온 것이었다.

나 외에는 다 틀렸고, 나 외에는 다 이상한 사람이라고. 그런 엄청난 착각 속에,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상대를 미워하고, 동시에 왜 나를 존중해 주지 않지? 어떻게 사람들이 이렇게 배려와 이해가 없지? 라고 하면서 후회하고, 한숨짓고 포기하려 하고. 그만두고 싶고, 도망치고 싶고, 어디론가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떠나버리고 싶은, 그런 부정적인 마음들로 다시 가득 차버린다.

정작 내 마음은 못 본채. 오로지 눈에 보이는 대로 시비 하며 지냈던 것만 같다. 아주 깜깜한 지하 수만 키로 아래에서 그렇게 나 혼자, 나 홀로. 그 속이 얼마나 깜깜한 지도 모른 채, 그렇게 하루 하루 지냈다. 점점 마음수련 하기 전 아주 힘들었던 때보다 훨씬 더 이상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도덕도 없고, 상식도 없는, 그냥 자기 밖에 모르는 꼴통. 나를 돌아보지도 못하고, 비워 내지도 못하고 그냥 꽉 막힌 지하 수만 키로에 홀로 갇혀 살아가고 있었다.

 

사진 (1)
교도소보다 내 마음 속이 더 괴롭다

 

표정도 어둡고, 의욕도 없고, 그냥 걸어 다니는 시체처럼 아무 뜻과 의미도 없이 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쯤 누군가 구세주처럼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물병에 시커먼 흙탕물이 가득 차 있으면,
그 시커먼 물과 물병을 모두 버려야 하는데,
보자기로 그 물병을 가린 채 너는 물병이 없는 척, 그렇게 살고 있다.

 

 

정말 나의 모든 상황이 한번에 정리되는 말이었다.
나는 정말로 마음수련을 그렇게 했던 것이다. 보자기로 덮어 버리고 마음 없다고, 마음수련 다 했다고 하면서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 스스로를 고립시켜 놓고는 내가 마음수련해서 더 이상해졌다고, 마음수련하면 이상하게 되는 거 같다며, 옛날에는 이정도까진 아니었다며이런 미친 소리를 늘어 놓았던 것이다.

이게 정말 정상인가? 매우 심각한 상태이지 않은가? 살짝 비워진 그 기분에 취해 마음수련을 실제 오래 한적도 없었으면서 남 탓하며 지냈으니 스스로 못 버티는 지경까지 온 게 아닐까 싶다. 진짜 너무 힘들었고 너무 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스스로를 오래 탓하다 보니 너무 힘들었다.

정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힘들고 나니 정말 이대로는 못살겠다며 정신이 차려 지기 시작했다. 예전에 마음수련을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말이다.
이렇게 가다가 정말 허망하게 죽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꽤 진지하게 마음수련을 다시 해볼 마음이 생겼다. 진짜 내 실체를 인정하고 그 실체를 반드시 버리겠다는 각오가 생기니까 그때부터 진짜 내 마음이 잘 보였고 마음들이 진짜 버려지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마음이 조금씩 버려지다 보니 다시 기분도 좋아지고 도 잘 쉬어 지고 몸도 가벼워졌다.

하지만 이제 이것이 가장 조심해야 하는 기분이라는 것을 안다.
같은 실수를 또 하면 안되니까. 정말 다 버려지게 되면 행동이 바뀌게 될 테니까.
내 행동이, 내 습관이 여전히 나를 향하고 있으면 그건 아직 다 버려지지 않은 것이니까.

 

사진 (8)
내 마음수련의 실체는 나로부터 벗어나는 것

내 생각, 내 주장, 내 감정이 과연 상대와 세상을 위한 것인지, 오직 나를 위한 것인지 항상 되돌아보고 점검할 필요가 있다.
마음수련을 하면서 쉽게 빠질 수 있는 오류가 바로 지금 하고 있는 내 생각이 맞고, 내 기분이 중요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 하지 않는 그런 마음과 행동이다.

바로 이 상태를 조심하고 경계해야 한다. 지금 누구를 탓하고 있는지 잘 생각해보라.
내가 무슨 마음으로 지금의 행동을 하고, 지금의 감정이 어떤 마음으로 비롯되었는지 그 맥락을 잘 되돌아봐야 한다.

마음수련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자기를 돌아보고 그 마음을 버리는 곳이다. 조금 비워 졌다고, 조금 기분 좋았다고 끝이 아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그저 옛 속담이 아님을 절절하게 깨닫는 것 같다. 비워질수록 겸손해지고, 비워 질수록 바르게 살아가게 된다.

그게 마음수련이 가진 힘이고, 가장 큰 장점이다. 마음수련을 오래 했다고, 마음수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내가 판단 하려 하지 말고, 내 위주로 생각 하려 하지 말자. 다 함께 사는 세상을 자기 혼자 따로 살지 말자. 좀더 명확하고, 객관적으로 자기의 실체를 돌아보고 인정하고, 반드시 그 마음들을 비우면 좋겠다.

그래서 참 행복을 느끼며 살았으면 좋겠다

 

마음수련 실체, 행복에 대하여

사람들은 누구나가 행복이란 단어를 좋아한다. 지금이 행복하다면, 과연 행복한 삶을 위해 쉴 틈 없이 달리고 있을까. 내가 처한 현실이 대부분 불만족스럽기에 그 부족함을 채우고 싶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 중 가장 높은 단계의 개념이 행복 추구가 아닐까 싶다.

그럼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어떤 사람이냐고? 나 역시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막연한 행복의 실체를 잡기 위해 긴 시간을 달려온 게 사실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친구들과 만나고, 대학에 진학하고, 직장을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고… 쳇바퀴처럼 도는 삶에서 내가 추구하는 가치의 끝은 어디인가.

마음수련, 행복의 실체에 대하여

사실 그것보다 앞선 근본적인 의문은 내가 진정으로 무얼 하고 싶은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 모르겠다는 것이다. 내 스스로가 원하는 것에 대한 불확신이… 현재, 그리고 나아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자꾸만 공허하고 허전한 마음이 들게 된다.

더 확장시켜 보자면 그럴수록 잘 살고 있는 것만 같은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게 되고, 눈치보게 되고, 움츠러들고 또 그럴수록 내 자존감은 낮아지고…이러한 감정과 생각들이 돌고 돌아 제자리에 머무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OTL… 그래서 현재는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수련 실체를 찾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비누방울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것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그럼 내 행복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누구나가 꿈꾸는 그것은 어떤 감정이며, 어떻게 하면 얻어질 수 있는 것일까. 오랜 시간 행복에 대해 연구한 심리학자들 역시 여러 방면에서 행복해지는 삶의 조건에 대해 고민해왔다. 충분한 소득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하는 일반론에서부터, 적절한 취미생활, 수면, 가정환경 등이 생활에 영향을 가져온다는 연구 결과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그렇다면 과연 위에서 언급한 그러한 조건들이 충족 되어지면 사람은 누구나 행복의 실체를 잡을 수 있을까? 세계적 행복학자인 Raut Veenhoven은 말했다. 위의 조건들이 맞춰진다고 해도 모두가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바로 개인 감정의 특성 때문이라고. 즉, Happiness는 특정한 어떤 감정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매우 ‘주관적인’ 만족감이기 때문에, 주위에서 보기에 최고의 조건을 가지고 있더라도, 본인 스스로 불만족스러우면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결국 행복의 전제조건은 어떤 환경, 경제적 조건 등이 아닌 내가 무엇을 추구하고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본인 스스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이를 통해 자기 자신에게 알맞은 삶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짚어가야 할 것은 내 자신을 어떻게 알아가느냐 인데…나의 경우를 살펴보면 이 해답을 마음수련 실체를 통해 조금씩 알아가게 된 것 같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 어떤 감정들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지…차근차근 나를 돌아보는 시간들이 꼭 필요했었다고나 할까. 한 마디로 내 자신을 돌아보는 것! 그리고 나란 인간의 실체를 파악하고, 그것을 형성하는 생각들을 버려나가는 것. 이를 통해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 진정한 내 자신을 마주하게 되고, 내면으로부터의 확신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사실 그 어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의 행복이니까.

마음수련을 통해 만나는 행복의 실체

그래서 지금 어떠냐고? I’m Happy! 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마음수련, 나도 모르게 하는 실수들의 실체

마음수련, 나도 모르게 하는 실수들의 실체

작은 실수부터 큰 실수까지 나의 삶은 내내 크고 작은 실수투성이다. 무심코 툭 내뱉은 말 때문에 곤욕을 치르거나 아무 생각 없이 행동을 해서 아주 난감한 상황을 만들거나 나도 모르게 한 행동 때문에 주위를 놀래키곤 했다.

초등학교 4학년때인가, 그래 4학년. 박영희 선생님이 담임이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하루는 우리 반 애들이 숙제를 많이 안해와서 선생님이 매우 화가 나셨었다. 선생님은 너네 뭐야. 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 단체로 숙제도 안하고. 도대체 문제가 뭐야? 라고 하시며 화를 내셨는데 제일 앞자리에 앉아 있던 내가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을 했다.

선생님이 잘못했겠지.”

순간 정적. 선생님이 순간 나를 탁 쳐다보시며 한참을 그대로 바라보셨다. 나도 너무 놀래서 선생님을 계속 쳐다 봤던것 같다. 머리 속이 너무 바빴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한거지? 선생님한테 뭐야. 내가 미쳤나? 대체 왜…’ 선생님은 결국 나를 부르셨고 수많은 욕과 함께 약 30분 넘게 쳐 맞았던 기억이 난다. 때리던 선생님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셨던 것 같고, 맞고 있던 나 또한 너무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못하고 계속 맞고만 있었던 것 같다.

무심코 툭 튀어나온 말의 실체. 정말 다시 생각해봐도 의도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어떻게 미치지 않고서야 선생님한테 대놓고 ‘당신이 잘못했자나’ 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분명 그것은 실수다. 물론 어린시절 선생님은 존경의 대상이고 믿고 따르는 대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서운 존재, 나를 귀찮게 하는 존재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무의식 속에 선생님도 한번 당해도 싸다는 생각을 했을 테고, 그 마음이 결국 한 순간 표출되었을 지도 모른다. 무의식 속에 있었다해도 그것을 표현했다는 것 자체가 그 당시 엄청 큰 충격이었다. 말 그대로 엄청난 실수였다.

 

말실수의 실체

최근에도 기억에 남을만한 실수를 했었다. 내 친구 동식이랑 있을 때의 일이다. 동식이는 살면서 단 한번도 여자친구가 없는 기간이 없을 정도로 연애 중독인 친구다. 동식이랑 홍대카페에서 만나기로 했고, 그 자리에 여전히 동식이는 여친과 함께 나왔다. 나는 당연히 최근에 얘기한 그 친구려니 생각하고 “동식이랑 사귀니까 어때요? 재밌죠?”라고 했는데 순간 짧은 정적이 흐르면서 하는 말이 “사귀는 사이 아닌데요?”라고 하는 거다. 헉! “아,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 굉장히 뻘쭘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동식이는 내게 “이 형이 미쳤나. 왜 안하던 오바를 해! 좀 조용히 있어, 좀. 제발!”라고 하는 거다. 나는 진짜 사귀는 것처럼 보여서 한 말인데… 에이… 진짜…

그 후 동식이한테 연락을 받았고 그 때 그 사람이랑 사귀게 되었다고 했다. 하… 참… 이건 또 뭐냐… 그때 그 뻘쭘과 함께 짜증이 막 올라왔다. “거 봐라. 너네 딱 봐도 그렇게 보였는데 와 사람하나 이상한 사람 만들고 진짜” 그러면서 욕을 해댔었다.

그리고 얼마 전 동식이를 만났다. 그 때 만났던 그 사귀게 되었다던 그 여친이 같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냈다. “안녕하세요~ 그때 동식이랑 썸 탈 때보다 지금 더 이뻐지셨네요~~호호호” 그런데 또다시 정적이 오는 거다. ‘설마… 뭐지? 얘네 왜 이러지?’ 옆 자리에 있는 동식이에게 카톡이 왔다. “형, 나 얘랑 헤어졌어. 제발 입 좀 다물자. 제발!”

와, 내 참 어이가 없어서. 대체 이건 내가 실수한 게 맞나 싶었다. 이건 내 실수라고 하기에는 상황이 정말 야속한 것 아닌가? 그렇게 난 또 자리를 불편하게 만들게 되었고 정말 너무 황당 스러웠다. 하지만 상황적으로는 내가 또 실수를 한 것이 “죄송해요. 제가 일부러 실수를 하려고 태어난 사람 같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라고 정중히 사과하고 그냥 조용히 처묵처묵 했던 것 같다.

 

실수 또로록

 

이런 실수에서 난 정말 ‘자기가 알고 생각하는 것 밖에 말하고 행동할 수 없구나’ 를 느끼게 된다. 결국 내가 봐온 기억이 전부이고, 내가 하는 생각은 절대 정답일 리가 없다는 것이다. 내 생각이 정답이라고 확신을 갖는 순간, 실수가 찾아 오는 것이 아닐까 란 생각도 든다. 그동안 했던 실수들을 되돌아보면 크던 작던 간에 나도 모르게 했던 행동과 말이 거의 대부분이어서 다소 억울하기도 하고, 정말 되돌리고 싶을 만큼 후회스럽고, 자다가 이불 킥할 만큼 정말 떠올리기 싫은 기억들이 태반이다.

인생 선배들은 실수의 실체에 대해 말하길

“실수를 두려워하지 마라” / 알버트 아인슈타인

“살면서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는 실수할까 봐 계속 걱정하는 것이다” / 앨버트 하버드

“실수할 자유가 없는 자유란 가치가 없다” / 마하트마 간디

“우리가 하는 독창적인 일은 실수뿐이다” / 빌리 조엘

라고 하지만 막상 실수를 하게 되면 언제나 나를 위축되게 만들고, 후회하게 만들고, 부끄럽게 만든다. ‘내가 왜 그랬지?’ 하면서 말이다..

 

나란 인간

 

살면서 누구나 실수는 한다. 그렇지만 실수를 하지 말아야지 하는 것 보다 실수를 왜 하는지, 이런 실수에 대해 나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마음수련 명상 방법으로 실수하는 마음의 실체에 대해 좀더 깊게 들여다 보고자 한다.

 

  1. 대부분의 실수는 나도 모르게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수는 나도 모르게 하는 것이 아니다. 실수를 할 때는 나도 모르게 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놀라게 되고 그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그런데 정말 나도 모르게 그런 행동을 했을까? 어떤 이는 이런 행동 패턴을 무의식으로 인한 행동으로 단정짓곤 하지만 사실 무의식이라고 하는 것도 깊게 들어가보면 결국 내 마음 속 깊숙이 자리잡은 마음이다. 겉으로 들어나지 않은 마음, 결국 그 실체는 내 마음(=생각)이다.

무의식적으로 나온 행동이었기 때문에 내 잘못이 아니다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순간적으로 내뱉는 말이나 행동도 결국 그 생각(=마음)이 내 안에 있었기 때문에 표출 된 것일 뿐이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수많은 것들 중의 하나이고, 그 중에 어떤 것은 왜곡된 기억일 것이고. 그런 수많은 복잡한 기억들 중 하나가 어떤 상황과 맞물려 툭 튀어 나올 때 말 실수, 행동 실수 등이 나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수가 나온 상황, 기억 등을 떠올려보면 왜 실수 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고, 이렇게 돌아볼 수 있기에 실수의 원인을 찾을 수 있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실수와 우울감

  1. 고작 실수 하나 때문에 자기 속으로 기어 들어가 우울하게 지낼텐가?

사실 이 질문은 내가 스스로 가장 많이 하는 행동을 역으로 표현 한 것이다. 자존감이 별로 없고, 소심하고, 열등감이 좀 많은 유형의 성격을 가진 사람은 대부분 실수에 대해 엄청 깊게, 오랫동안생각하고, 많은 후회와 감정의 상처를 받는 것 같다. 실수를 하면 에이..썅…하고 그냥 훅 넘어 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나는 속으로 끙끙 앓는다. 도대체 왜 이럴까?

돌아보면 나는 언제나 잘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일도 잘해서 칭찬받고 싶었고,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이런 욕심 때문에 실수는 더더욱 해선 안되는 사람이었다, 난. 그래서 실수를 해서는 안된다는 강박이 있었고 실수를 했을 땐 남들보다 훨씬 큰 상실감이 자리 잡는 것 같다. 실수를 그 즉시 인정하지 못하고, 자기 마음 속으로 계속 끌려가는 마음을 깊게 들여다 보면 무의식 중에 결국 앞서 얘기한 내 욕심들, ‘나는 잘해야 해. 나는 칭찬받아야 해. 사람들은 날 좋아해야 해.’등의 욕심들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나인데 이런 저런 사람으로 보여 지길 기대하는 마음, 그 마음은 곧 실제 존재하는 나를 부정하고, 상상 속의 나를 하나 만들어 놓고 그 사람으로 살길 바라는 망상 속에 비롯된 것이다. 나는 그것이 내 망상일 뿐이고,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람들

다행히 마음수련 명상을 만나 그런 나를 인정하고 버릴 수 있었지만. 버리지 못하고 계속 간직하면서 살았다면 나는 여전히 실수를 두려워하고, 어떤 사람으로 비춰 지기를 바라며 하루하루 내가 아닌 남으로 살았을 것이다. 지금에서야 말할 수 있지만 사람들은 사실 나란 인간에 큰 기대가 없다. 내가 무슨 실수를 하건(물론 순간에는 살짝 짜증이나 화가 나겠지만) 그냥 그뿐이다. 내가 뭘 하든 자기들 인생에서 나란 사람이 차지하지는 비중이 얼마 되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내가 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 사람들도 어차피 다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지 않을까?

 

아무튼!! 고작 실수 하나 때문에 자기 속으로 기어 들어가 우울하게 지낼텐가?

실수는 언제나 불현듯 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그럴 때 실수를 쿨하게 인정하고(혼날 것은 빨리 혼나고!!) 그리고 그 실수에서 재빨리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마음수련 실체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실수를 왜 하게 되었는지 되돌아보고, 원인을 찾고, 또 그 마음을 버리면 되겠지만 명상을 하지 않더라도 그런 마음에서 빨리 벗어 날수 있도록 스스로의 방법을 찾길 바란다. 세상은 내가 오늘도 실수를 하거나 말거나, 언제나 그랬듯 계속 지금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으니까. 나만 빨리 그 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최선을 다하길 바래본다.

 

 

마음수련, 외로움 그 쓸쓸함의 실체

마음수련, 외로움 그 쓸쓸함의 실체

잘 지내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외로움. 사람들과 같이 있어도 외롭고, 혼자 있으면 더 외롭고, 회사에 서도, 집에서도 그냥 외롭다. 나도, 사람들도 그렇게 가끔 외로움을 느끼는 것 같다. 한번씩 찾아오는 감기처럼.

흔히들 외로워 보이는 사람에게는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다. 다가가서 어깨를 툭 쳐 보기도 하고

무슨 일 있냐고 넌지시 대화를 해보려고 하기도 하고, 또 상대가 좋아했던 것들을 제안해 보기도 한다. 나도 외로워 봤기에 상대가 그 고독하고 쓸쓸한 외로움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바램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내가 그 마음을 잘 아니까.

마음수련, 외로움의 실체

그 외로워지는 기분을 말로 표현하긴 참 어려운 것 같다. 누군가 내게 “넌 왜 외로워?”라고 물어보면 ‘내가 왜 외롭지?’ 한참을 생각해 보지만 왜 외로운 지 쉽게 설명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외로움이란 정말 설명하기 힘든 마음이고, 결국 내 안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 물론 표면적으로 느껴지는 마음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누구도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는 것 같아, 같이 있지만 혼자 있는 것 같아, 내 편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 등. 세상사 혼자 사는 것처럼 고독하고 쓸쓸하고 조용하고 나 빼고 다 잘 지내는 것 같고 나만 이렇게 처량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끊임없이 자기 속으로 들어가 숨어버린다. 이런 마음으로 지내게 되니 그 뒷모습만 봐도 참 외로워 보인다고 말하는 것 같다.

loneliness and human

어쩌면 외롭다고 느끼는 본인 말고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다. 실제로 주변을 돌아보면 그런 나를 이해 하려고 노력하고 함께 하고 싶어하고 진심으로 도와주려고 하니 말이다. 이렇듯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본인 말고는 그런 나를 위로 해주려고 하지 그냥 내버려 두려고 하지는 않는다. 다만 지켜 보는 것일 뿐이다. 섣불리 다가가는 것 보다는 상대의 마음이 조금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거다. 다시 말해 나 지금 외롭다고 마음으로 소리치고 있는 사람에게 외로운 거 안다고, 하지만 네가 다가오지 말라고 소리치는 것 같아서 기다리고 있는 거라고 말이다.

 

brightness and loneliness

참 아이러니 한 것은 그렇게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하다고 하는 사람은 점점 고독을 향해 가고 있고, 세상과 연결된 문을 닫아 버린다. 그들은 “너 괜찮아?”라고 물어보면 백이면 백, ”응, 괜찮아.”라고 말한다. 안 괜찮으면서 정말 많이 외로우면서 절대 나 지금 외롭다고 말하지 않는다. 본인 스스로 조차 외롭다는 말을 되뇌이지 않는다. 나 스스로 외롭다고 인정해버리는 순간, 내가 너무 불쌍하기 때문이다. 너무 불쌍하고 처량한 자기 자신을 마주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에게 조차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 아주 철저히, 절대 그런 자기 자신을 인정하지 못한 채.

loneliness and road

모든 이가 이렇다는 건 아니다. 눈치 챘겠지만 이 이야기와 모든 사례는 철저히 내 이야기다. 유독 어릴 적부터 이런 마음에 자주 직면하게 되었고 그래서인지 남들보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강도가 더 심한 것 같다.

대체 이 외로운 마음이 뭐길래 이토록 자기 속에 갇혀 괴로워하게 되는 걸까? 속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이 마음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이 간절하면서 대체 왜 외롭다고 느끼는 걸까? 진짜 이 지긋지긋한 외로움의 실체는 무엇일까? 언젠가 마음수련 명상을 통해 이 외로움의 실체에 대해서 마음을 돌아봤었는데 당시에 정말 한참동안이나 돌아봤던 기억이 난다. 나는 왜 그토록 외로워 하는가? 외롭다라고 하는 마음은 사실 내 생각, 내 말, 내 행동에 상대가 동의하지 않아서 발생하게 되는 태도에서 비롯되 자기자신을 고립시키는 마음이다. 내 것과 맞지 않기에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 없다고 느끼고, 나만 빼고 다들 다 잘 지내는 것 같고. 그렇게 내 마음에 갇히게 되면서 부정적으로 나를 가두게 되는 마음, 절대 열고자 하지 않는 마음, 내 것을 포기 하고 싶지 않은 마음, 그 마음에 사로잡혀 세상에 혼자 내버려져 있는 것 같은 그런 괴로움.

내 외로움의 시작은 내 마음대로 뭔가 되지 않고, 그것을 지켜만 봐야 할 때 그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점점 나를 가두고 스스로 고립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한 줄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 끝없는 터널처럼 고독하고, 쓸쓸하다. 이처럼 외로움은 철저히 자기자신을 고립시켜 버린다. 그렇게 바라본 세상은 정말 나를 제외하고 모두다 행복해 보이고 모두다 즐거워 보인다. 그러면서 그 대열에 함께 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이내 곧 풀이 죽어 말없이 한숨을 쉬게 만든다. 끈적한 본드처럼 내 마음에 들러 붙어있는 그런 느낌, 이 지긋지긋하고 감기처럼 불쑥 한번씩 찾아오는 이 외로움을 우리는 어떻게 극복하는 걸까?

마음의 문을 열다

어떻게 그 마음이 극복되고 다시 일상처럼 모두와 함께 어울려 지냈는지 그 순간이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내 경우엔 마음수련을 통해 잘 돌아보니 결국 내가 그 닫혀버린 마음을 열려고 하는 순간, 그때부터 변화가 시작되었던 것 같다. 주변인들에게는 참 미안한 말이지만 누군가 나를 진심으로 위로 해준다고 해서 그 순간 마음이 열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스스로 이 곳에서 이 터널 같은 곳에서 벗어나겠다고 마음 먹는 순간, 그때서야 주변에서 해주는 말도 들리게 되고 또 내게 다가와 줘서 힘내라고 손 내밀어주는 사람들이 참 고맙고 미안하고 그랬던 것 같다. 그들은 나처럼 어디론가 떠나 있지 않았고, 언제나 나와 함께 하고 있었던 사람들이다. 내가 그들과 떨어져 있었을 뿐. 그렇기 때문에 주변인들이 참 고맙게 느껴 진다.

 

마음의 문은 결국 자기자신이 열어야 한다. ‘외롭다’라는 마음에 계속 갇혀 있기 보다는 자기 생각, 자기 뜻을 좀 내려놓고 그 마음에 힘을 좀 빼는 거다. 힘이 빠졌을 때 그 마음의 문도 쉽게 열수 있다. 내가 그 문을 직접 열어야 한다. 간절해 보기도 하고, 포기해보기도 하고, 그래서 그 마음들을 모두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내가 도망쳤던 세상과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그렇게 시작함으로 인해 외로웠던 마음은 걷히게 되고 다시 웃음을 찾을 수 있다.

loneliness and hope

나같은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주변에 자존감 높은 사람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하면서 그냥 훅~ 하고 지나가 버린다. 그런 이들에게 외로움이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냥 이런 마음을 대수롭지 않게 휙~ 넘겨 버린다. 그런 그들처럼 지금 당장은 그게 힘들지라도 계속 그렇게 생각하고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그렇게 노력 해야 한다. 나는 마음수련 명상을 통해 그런 나 자신을 제대로 돌아보고 그 마음들을 하나 둘씩 버리다 보니 꽉 붙잡고 있던 마음들이 실제로 놓아지게 되면서 얼굴색이 밝아지고 사람들과 웃게 되고 그렇게 조금씩 가벼워졌던 것 같다. 어쨌든 마음이 문제다. 절대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이 문제라는 것을 빨리 인지하고 해결해나가야 할 것이다. 내 마음이 문제인데 다른 곳에서 해결을 바라니까, 다른 곳에서 정답을 바라니까 해결이 안 되는 것이다.

마음수련 함께 살아가다

외로움. 불쑥 찾아 오게 된다면 그 내면의 마음을 철저히 되돌아 보길 바란다. 그리고 나서 그 마음들을 실제로 좀 놓아보자. 그랬을 때 얼마나 가벼워지는지 한번 느껴 봤으면 싶다. 부부싸움이 칼로 물 베기라는 말처럼 외로움과의 싸움도 손바닥 뒤집듯이 쉽게 벗어 날수 있다. 기억하자.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 보일 때는 절대 그 사람 곁을 떠나지 말고,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라면 내 주변 사람들이 내 마음이 열릴 때까지 내 곁에서 말없이 계속 기다려 주고 있다는 것을! 세상은 절대 혼자가 아니다. 함께 살아가도록 되어 있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고 순리이다. 우리는 절대 혼자가 아니다.

마음수련 경험자- 심리학 편

1 외로움

 

우리는 소중한 사람들이 힘들어 할 때 “그러게 왜 그랬어. 너가 그러니까 안 되는 거야. 넌 이제 끝이야” 같은 말은 잘 하지 않는다. 가뜩이나 힘든 사람에게 비난을 던져서 더 위축시키는 일은 괜찮은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자기 자신을 향해서는 이런 말들을 서슴지 않는다. “난 왜 이럴까”, “나는 항상 이래, 왜 나만”, “역시 나는 안 되는 놈이었어”, “내가 문제야. 왜 나만 문제여야 하나”, “나는 없어져야 해”

 

이런 연구가 있다. 삶이 어렵고 힘들 때, 사람이라면 누구나 여러 번 겪기 마련인 실패와 좌절 상황에서 자기 자신에게 어떻게 대하는지가 그 사람의 정신건강과 행복, 극복 능력, 실패 후의 태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Neff & Vonk, 2009).

 

2 쓸쓸함

살면서 절대로 그 어떤 실수나 실패도 해선 안되고 만약 하게 되면 그걸로 내 인생은 끝, 나는 고작 그거밖에 안되는 가치 없는 인간이라는 식의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작은 실패에도 쉽게 무너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나는 부족한 인간일 뿐. 인간이 이따금씩 실패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 이라며 비교적 현실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실패를 하더라도 좌절이 크지 않다고 한다.

 

어쩌면 부족함 많은 우리들에게 실패란 성공보다 더 당연한, 호들갑 떨 필요 없는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늘 있는 일이어서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 현실을 그대로 담담하고 쿨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따라서 스스로에게 너그러운 사람들의 실체는 자신의 잘못과 실패를 더 쉽게 인정하며, 그 책임 역시 본인에게 있음을 잘 받아 들이는 편이다. 반면 실패를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실패를 해도 그걸 인정하지 못하거나 인정하더라도 나는 책임이 없다며 책임을 회피하거나 상황과 상대의 탓으로 돌리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3 외로움

나는 어떤 사람이고 나의 행동패턴이 어떠한지 알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명상을 하고 있고 이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곤 한다. 나 역시 마음수련을 통해 나를 되돌아 볼 수 있었다. 나의 삶은 수많은 실패와 실망, 그리고 답답하거나 괴롭거나 하는 일이 유독 많았고, 그렇다 보니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조차도 극단적인 측면이 많았다. 예를 들면 친한 사람하고만 유독 말을 한다거나 평소 싫어했던 사람과는 부딪힘도 많았고, 또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하지만 속으로는 엄청난 가시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수련을 통해 되돌아본 나의 실체는 나 자신 뿐만 아니라 상대에게 조차 너그럽지 못한 편이었던 것이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들은 자기 자신뿐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실수를 할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그럼에도 누구나 따듯함과 친절을 필요로 함을 알지만 자신에게 조차 너그럽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다른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연구자들은 도로에서 타이어가 터져서 곤란해 하고 있는 사람이 과속(자신의 잘못)을 했거나 또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곤란해하고 있을 때, 또한 곤경에 처한 사람이 백인일 때 또는 히스패닉 등 소수인종일 때 각각 상대방을 도울 의향이 얼마나 있는지 물었다. 그 결과 스스로에게 너그러운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상대를 가리지 않고, 그 사람에게 일부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상대를 비난하지 않으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도움을 줄 의향을 보였다. 또한 너그러운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상대의 상황에 감정적으로 이입해 본인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덜 보였다. 공감 능력의 한가지 한계는 타인의 감정이 그대로 옮겨 온다는 특성 때문에 지나치게 공감 능력이 뛰어나 감정이입을 심하게 하는 경우, 감정 소진이 빨리 올 수 있다는 점이다(Batson et sl, 1987).

 

마음수련 심리학 관대함

이렇게 자신의 부족함이나 실패에 대해 그럴 수도 있지라고 너그럽게 받아드릴 줄 아는 것은 본인의 정신건강과 발전을 위해서뿐 아니라 타인의 행복, 나아가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데도 이바지할 수 있다고 한다. 긍정심리학자(THE JOURNAL OF Psychology)에 실린 한 연구에서 역시 스스로의 부족함에 따듯할 줄 아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부족함에도 너그럽고 관대한 모습을 보인다(Welp & Brown,2014)라고 하였다.

 

때론 공감 능력이 더 뛰어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끔찍한 상황이나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 상황을 접하는 것 자체가 본인에게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고 끔찍한 경험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그러운 사람들의 경우 기본적으로 삶의 어려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특성 때문에 타인의 어려움에도 심하게 가슴 아파하기보다 자신의 어려움을 대처할 때처럼 비교적 의연한 모습을 보였고 도움을 주려는 경향도 더 많이 보였다. 따라서 유독 자기에게만 관대하거나 혹은 유독 자기에게만 비판적인지는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마음수련 심리학 부족함

심리학자 Leary는 자신을 비난하고 탓하는 것이 버릇이라면 나와 비슷한 부족함을 지닌 타인을 비난할 자격을 미리 얻어 두는 행위라고 말했다. 자신을 향한 비난은 결국 ‘부족하면 비난을 받아야지’ 라며 타인을 향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자신을 향해 완벽 주의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은 타인을 향해서도 완벽을 요구하며 비판적인 경향을 보인다는 연구들이 있었다.

 

나는 마음수련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행위는 나 자신에 대한 이해부터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내가 하는 행동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또 어떤 상황을 어떻게 기억하고 그것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는지를 되돌아 보게 되니 내 마음이 그 동안 스스로에게 얼마나 부정적이고, 독하게 대했는지 알게 되었고, 결국 내가 상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지내왔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나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게 되는 순간부터 상대의 말이나 행동을 보았을 때 비로소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누구나 크고 작은 약점과 부족함을 갖고 살기 마련이다. 특히 그런 나의 부족함이나 상대의 부족함이 드러날 때 나와 상대를 비난하기 보다 따듯한 말로 격려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의 존재는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상대를 보기 전에 내 마음부터 보고 내 스스로의 마음을 먼저 챙겨 보는 건 어떨까? 내가 나를 응원하고 힘냈을 때 나 또한 상대에게도 그렇게 할 수 있으니 우리 모두 그런 응원을 받을 수 있다면 삶이 훨씬 따듯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따듯함을 허락했으면 좋겠다.

 

참고문헌

Batson, C.D., Fults, J., & Schoenrade, P. A. (1987). Distress and empathy: Two qualitatively distinct vicarious emotions with different motivational consequence. Journal of Personality, 9-39.

Neff, K. D& Vonk, R. (2009). Self-compassion versus global self-esteem: Two different ways of relating to oneself. Journal of Personality, 77, 23-50.

Welp, L.R., & Brown, C. M. (2014). Self-compassion, empathy, and helping intentions. The Journal of Positive Psychology, 9, 54-65

 

참고문헌

 

마음수련, 신해철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가사처럼

신해철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 가사처럼

이 세상 살아가는 이 짧은 순간에도

우린 얼마나 서로를 아쉬워하는지

뒤돌아 바라보면 우린 아주 먼 길을 걸어 왔네

조금은 야위 어진 그대의 얼굴 모습

빗길 속을 걸어가며 가슴 아팠네

얼마나 아파해야 우리 작은 소원 이뤄질까

그런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난 포기 하지 않아요

그대도 우리들의 만남에 후횐 없겠죠

어렵고 또 험한 길을 걸어도 나는 그대를 사랑해요

 

조금은 야위 어진 그대의 얼굴 모습

빗길 속을 걸어가며 가슴 아팠네

얼마나 아파해야 우리 작은 소원 이뤄질까

그런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난 포기 하지 않아요

그대도 우리들의 만남에 후횐 없겠죠

어렵고 또 험한 길을 걸어도 나는 그대를 사랑해요

 

신해철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 가사처럼

이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좀 복잡해진다. 그냥 신해철 생각이 나기도 하고… 노래를 듣다가… 가사에 몰입되어… 지난날이 떠오르기도 하고.. 또 정말로 보고싶은 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의 심정이 이 노랫말로… 내게 말해 준다고.. 생각하니… 감정이 격해져서… 눈물이 나오고 그랬던 것 같다. 신해철 노래는 멜로디도 좋지만 특히 노랫말이 너무나 좋은 것 같다. 뭐랄까 대부분의 가사들을 곱씹어 생각해 보면 가사 속에 감정의 감정을 아주 깊이 고민해보고 또 느껴보고 성찰해보고 난 뒤 내려진 감정의 결과물 이라고 느껴지는 경우랄까?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의 노랫말도  역시나… 자기 자신의 성찰의 시간을 아주 많이 가진 뒤에 나올 수 있는 말을 아주 솔직하게 읊조리는 것 같다. 특히 이 부분..

 

얼마나 아파해야 우리 작은 소원 이뤄질까

그런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난 포기 하지 않아요

그대도 우리들의 만남에 후횐 없겠죠

어렵고 또 험한 길을 걸어도 나는 그대를 사랑해요

이 부분의 가사는 정말 놀랍도록 기승전결이 있는 것 같다. 내가 느끼기에 이 가사는 많이 아파도 봤고, 많이 후회도 해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사랑을 위해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슬퍼하지 말고, 낙담하지 말자. 설사 또 후회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지금껏 했던 대로 최선을 다해 사랑 해보자. 결국은 사랑이 내가 닿을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니까.. 라고 느껴진다. 되게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그 모든 과정을 철저하게 아주 깊숙이 겪어보고 비로소 내려진 자기의 솔직한 마음같이 느껴진다.

3 천재 뮤지션 신해철

이 가사처럼 내가 살아가는 시간도 장소, 사람들, 일, 사랑 이 모든 것들도 내가 실제로 경험해 봐야 알 수가 있듯이 그런 감정들을 실제로 경험 해보지 않으면 도저히 알 수가 없을 것이다.

뭔가 답답한 감정들.. 해결되지 못한 상황들.. 지금 당장 내가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포기하는게 아니라 아파 볼 만큼 아파봤는지.. 후회 할 만큼 최선을 다 해 봤는지.. 한번 돌이켜 생각해본다면.. 지금의 내 모습이 더 이해가 잘 될 것 같다. 일도, 공부도, 사랑도, 마음수련 조차도 모든 것들에서 내가 얼만큼 걸어왔는지.. 얼만큼 노력을 해왔는지..나를 되돌아 보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4 보고싶다 신해철

오랜만에 듣게 된 신해철의 노래에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좀더 행복해 보자고, 좀더 벗어나 보자고 시작하게 된 마음수련 명상인데 어느덧 마음수련을 하면서 또 마음이 비워지면서 좋았던 기억은 오랜 추억이 돼버린 내 모습이 참으로 우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던 중 신해철 노래 중에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가 그런 내 마음을 콕 집어 또다시 나를 되돌아보게 해주었다.

 

5 신해철 기억하리

지금 내 마음이 너무 아파도.. 견디기 힘들만큼 괴로운 마음에 숨조차 잘 쉬어지지 않더라도… 그 마음에 매몰되어 끝없는 우울 속에 들어 가더라도… 포기 해서는 안된다는 마음 하나만으로도 그 마음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나를 되돌아 보고 그 속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길을 걷다 어떤 장면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할 수도 있고,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날따라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거나.. 우연히 듣게 되는 노래 에서도 일상 속에 있지만 단 하나의 장면으로 내 마음에 쿵 하고 와 닿으면 그 순간 나는 일상을 벗어나 지금 올라오는 내 마음들을 충분히 되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마음수련의 힘인 것 같다. 되돌아 본다는 것은 언제 어느 때나 순간적으로 할 수 있는 거니까..

 

희망을 품고 사는 것을 포기 하지 말자. 이제 그만 너무 가슴 답답해 하지 말자. 이제 그만 슬픈 표정 짓지 말자. 다 지나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자나.. 그러니 힘내자.

 

故신해철 벌써 추모 3주년이라니… 보고싶다, 신해철!

 

(사진출처: 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