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수련 일상] 들어주는 것의 놀라운 힘

대화의 실체

친구: 아니야. 아니라니까. 내말 들어봐바. 아까도 얘기 했지만…..
나: 니는 내말은 듣고 있는거가? 그거 아니라고 몇번 이야기 했노. 그때.
친구: 답답하네. 아니 왜케 못 알아 들어?

친구 놈과 30분째 같은 얘기 중이다. 서로 아니라는 말만 몇 번째 하는지 모르겠다. 계속 자기 얘기만 하고 있다. 아니라고, 내가 맞다 하면서. 이야기의 주제는 다양하다. 영화, 돈, 정치, 주식 등. 이렇게 자기 이야기만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따금씩 서로 통하는 얘기가 나올 때면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다. 마치 긴 세월 오래 떨어져 지내온 사이였는데 오랜만에 만나서 너무 반갑다는 느낌과 비슷할려나?

암튼 친구들과 나는 그렇게 서로 몇 십년 째 각자 자기 얘기만 하고 살아 왔다. 비단 친구들과 있을 때만 그런 건 아니다. 사귀던 여자친구하고도 분명 그랬었고, 직장 동료와도, 형제, 부모님 하고도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
“그게 아니고.”
“아니, 아니, 내 말은…”
“뭔 말인지는 알겠는데…”

다시 곱씹어 생각해보니 애초에 사람과의 대화에 기본 소양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상대방 얘기는 절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오로지 내가 하는 말과 내 주장이 상대를 납득 시켜야 하고, 또 상대는 내 말에 굳이 “그래 네 말이 맞네” 라고 해줘야 대화가 끝날 지경이니… 하아…

일반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실체

대화가 잘 되어야 서로를 잘 이해 할 수 있고, 대화가 잘 되어야 서로 오해도 줄일 수 있고 편안한 사이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은 들지만 쉽진 않다. 참 이기적이게도 내가 이야기를 할 땐 내 눈을 바라보고 경청해주는 사람이 참 좋고 말하고 있는 와중에 상대방이 스마트폰을 하거나 딴짓을 하며 집중을 하지 않는다면 정말 딱 말을 끊고 싶어진다. 그러나 나는 과연 상대가 말을 할 때 그런 태도로 듣고 있었던가? 당연히 나도 그런 태도를 가져 본적은 없는 것 같다. 내 말을 잘 들어주기를 바라지만 나조차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으니까.

예전에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요즘 유독 공감과 경청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뭔가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일을 하는데 있어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더 고민스러워진 게 사실이다. 잘 듣기. 경청하기. 공감하기. 다 같은 말인데 나는 왜 이리도 힘이 드는지.

책이나 인터넷에서는 타인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고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고 호감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상대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어보자. 그리고 의중을 파악하려고 노력도 해보자. 그리고 상대가 나에 대해 호감을 느낄 수 있게 해보자.” 다 좋아. 맞는 말이야. 그런데 어떻게 하란 말인가? 어떻게 하는지 알려줘야 하는게 아닌가? 그 방법을 좀 구체적으로 어떻게 상대의 이야기에 집중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상대의 의중을 파악 할 수 있는지,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상대가 나에 대한 호감을 가지게 하냐는 말이다. 좋은 말들은 많이 하면서 구체적으로 도움이 되질 않는다.

대화의 실체는 모순이다

좀더 노력이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는 상대의 말을 무조건적으로 알아 듣지 못하고 이해하지 않는 편은 아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 듣는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단지 나는 상대의 말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설득시키려고 하는 게 센 편이다. 즉 내 주장이 무조건 관찰되기를 바라는 성향이 매우 크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의 말을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들을려고 하지 않는 점이 문제다.

각 개인의 성향이겠지만 내 경우에는 거의 대부분 주장하고 설득시키려 하는 성향이 세기 때문에 점점 대화하는 것이 힘들어 지고, 지치고 하는 것 같다. 앞서 얘기했던 구체적으로 경청하는 방법을 알고 싶어 하는 것도 어찌 보면 내가 가지고 있는 성격과 성향을 무시한 채 대화의 맥락에서 상황이 좀더 나아지기만을 바라는 것 자체가 어쩌면 참 모순인 것 같다.

마음수련 실체는 생각을 없애주는 것

이런 모순 속에서 나는 마음수련이라는 명상 방법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명상을 통해 알 수 있었던 내 실체는 생각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하게 되는 생각. 이 생각, 저 생각, 잡념이 너무 많다. 언제부턴가 골똘히 생각을 하게 되는 버릇이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생각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 어떤 대화에서 조차 상대의 말에 집중을 할 수 가 없었던 것이다. 얘기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상대의 눈을 가끔씩 마주치며 맞다고 리액션도 하지만 사실 머릿 속에는 생각이 너무 많아 제대로 듣지 못했던 것이다.

그 생각의 연속으로 인해 상대의 말을 듣고 또 다른 생각이 떠오르고, ‘이 다음에는 이 말을 해줘야지.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반드시 말 할거야.’ 하면서 상대의 말이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그리고 바로 내 생각이 맞다는 전제 하에 주장을 펼치게 된다. 이렇게 되었을 때 상대는 상당히 기분이 나쁠 수 있다. 내 친구의 말처럼 정말 자기 얘기를 듣고 있는지 의심이 갈 수 밖에 없고, 이런 상황을 스스로 매번 만들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마음수련 명상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이 무조건 정답이라고 믿는 확신이 너무 세다는 것이다. 내가 내린 판단이 무조건 맞다고 생각하는 것. 매우 치명적이다. 자기 확신이 너무 강한 나머지 상대의 이야기를 존중하지 못한 채 언제까지나 내 생각을 밀어 부치게 된다. ‘아니야. 너는 틀렸고, 내가 맞아. 혹은 그래 니가 무슨 애기 하는지 알겠는데 말야 사실은 이거야.’ 라고 행동 하려 하기 때문에 상대의 말을 잘 들을려고 하지 않고, 내 주장만 계속 펼치는 것이다.

결국 나는 내 생각이 맞다는 확신이 너무 강해서 상대의 이야기를 속으로, 또 겉으로 무시하게 되는 것이고, 더불어 생각이 너무 많기 때문에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듣지를 못하는 것이다.

마음수련 실체는 자기주장을 없애주는 것

어쨌든 나는 이 두가지 문제 상황을 알게 되었고, 명상을 통해 조금씩 이런 상황을 해결하는 법을 익혀 가고 있다. 그 포인트는 바로 생각을 없애는 것이었다. 생각이 너무 많아 집중도 잘 못하고, 대화도 잘 안되니 그런 생각들을 명상을 통해 비워 나가는 것이다.

끊임없이 생각이 떠오를 때 마음수련 명상에서 제시하는 방법으로 그 생각들을 없애 나간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새 정말 내 머릿속을 뱅뱅 돌던 그 잡생각들이 하나 둘 사라지게 되고, 지금 내가 당장 해야 할 일에 집중을 잘 하게 된다. 물론 대화에서도 내가 스스로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듣게 되었다. 그것을 어떻게 알았냐면 한참 말을 하던 상대가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 나한테 하는 말이 “내 얘기 잘 들어줘서 고맙다.” 라고 해서 알게 되었다. 이를 통해 ‘와~! 내가 방금 이사람 얘기를 정말 그대로 아무 사심없이 아무 생각없이 그냥 들어 주었구나.’ 를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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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하나! 내 주장과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개념을 탑재하게 되었다. 사실 한번만 더 생각해보더라도 내 생각과 내 주장이 틀렸을 수도 있지 않은가. 예전에는 이런 생각을 거의 안했는데 지금은 ‘내가 하는 생각이 무조건 정답은 아니지. 틀릴 수도 있자나.’ 하면서 ‘상대의 이야기가 맞을 수도 있겠네?’ 라는 태도로 변화가 생겼다. 굉장히 평범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이러지 못했다는 것이 좀 수치스럽지만 지금이라도 이런 판단의 기준을 갖게 되어서 정말 다행인 것 같기도 하다. 상대의 이야기가 맞고, 내 생각이 틀렸다고 인정하게 되는 것. 이것이 대화를 이어 나가는데,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가지는 데 엄청 큰 역할을 하게 되는 것 같다.

06 진짜 대화를 하다

나는 명상을 통해 생각을 비우고, 내 주장과 생각을 내려 놓게 됨으로써 그제서야 진짜 대화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공감과 경청은 오롯이 나라고 하는 그 틀이 없을 때 가능하다. 상대를 존중하는 것 역시 내 생각이 많이 비워져야 하고, 내 생각을 내려 놓았을 때 상대를 존중 할 수 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진짜로 경청과 공감을 하게 되었을 때 상대와 나의 관계는 더욱 신뢰가 쌓이고, 그 정이 깊어진다. 내 얘기를 아무 사심없이 정말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은 내게 있어 참 좋은 사람이고 정말 믿을 수 있는 신뢰 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상대의 이야기를 정말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고민과 걱정거리를 반 이상 해결 할 수 있다. 대화를 하는 모든 사람은 각자의 마음에서 복잡한 것은 덜어내고 기분 좋은 감정을 취하려고 하기 때문에 마음수련에서 하는 그 비워내는 방법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매우 효율적으로 잘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 만으로도 상대를 위로 할 수 있다는 점. 이런 정서와 태도가 점점 늘어나 가깝게는 가족부터 친구, 동료 저 멀리는 사회에까지 모두가 다 소통을 잘 하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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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수련] 힘이 든다는 말의 실체

 

진짜 마음수련 실체는 수면

 

‘나 요즘 너무 힘들어’

‘사는게 왜 이리 힘드냐’

‘하아…… 참 힘들다’

그러고 보니 힘들다는 말을 참 많이도 하고 사는 것 같다. 어릴 때도 그랬던 것 같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일상에서 가끔씩 부딪힘이 생길 때 습관처럼 ‘힘들다’라는 말을 한다. “힘들다. 힘드네 정말. 힘들어 죽겠네.” 이런 말들을 나는 왜 습관처럼 내 뱉는 걸까? 아니 말도 그렇지만 나는 왜 이 힘든 상황이 반복되는 걸까? “힘이 든다”는 말의 실체는 도대체 뭘까?

가만히 생각해 보자. 도대체 언제 이런 말들을 하게 되고, 언제 힘들다는 마음을 느끼게 되는건지. 어릴 때부터 떠올려 보자. 힘든 상황들을.

아! 숙제 할 때!!

숙제 할 때 항상 힘들었던 것 같다. ‘숙제는 일단 친구들이랑 놀고 와서 해야지’라고 생각하고 실컷 놀고 저녁 늦게 돌아와서 밥을 먹을 때면 엄마가 꼭 한마디 하신다.

“니 숙제 다 했나?”

이 말 한마디에 마음이 힘들어지기 시작한 것 같다. 하기 싫은 숙제를 할 생각에 마음이 턱 막히고 앞으로 숙제를 해야 하는 상황이 괴롭고 숙제를 안하고 다음날 학교에 갔을 때 선생님한테 혼날 텐데.. 그 상황이 너무 싫고 뭐랄까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했다고나 할까? 너무나 간절했기에 갑자기 내 몸 어딘가가 심하게 아파서 도저히 숙제를 할 수 없는 상황이 왔으면 좋겠고 길가다가 갑자기 사고라도 나면 숙제 안해도 될 텐데…… 생각했던 것 같다.

마음수련에 도움이 되는 활동과 출근길의 실체

 

그러고보니 어릴 때도 그 나이에 맞는 힘든 상황이 많았던 것 같다. 선생님한테 혼날 때, 공부가 하기 싫을 때, 숙제가 엄청 많을 때, 친구랑 싸울 때. 그런 상황은 마치 마음에서 뭔가 쉽게 넘어가지 못하고 묵직한 마음이 확 들어오고 그 직후 바로 힘들다고 내뱉게 된다.
학창시절에는 공부가 힘들었고, 대학 때는 친구관계 때문에 힘들었고, 군대에서는 그냥 그 자체로 힘들었고 복학을 하고 졸업을 하고 사회에 갔을 때도 각기 다른 이유로 힘들었다.
사소한 것부터 정말 심각했던 것까지 힘들었던 상황이 수없이 많았었고, 그럴 때 마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 뱉으며 한발 내 딛는 것 조차 너무 힘겨워 했었던 것 같다. 어깨는 축 처지고 고개는 바닥을 향하고, 무슨 상황이 스쳐가도 어떤 감흥도 없이 그저 정말 힘 빠진 채로. 겨우 몸을 겨눌 정도.

맥주의 실체는 마음수련을 위한 것

 

힘이라는 것은 원래 육체적으로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릴 때나 팔씨름 할 때 필요한 것이지만 마음적으로 보면 마음속 에서 마음이 무겁게 느껴지면 힘이 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결국 힘이 든다는 말의 실체는 내가 가지고 있는 힘(=마음)을 평소보다 더 많이 써야 할 때 혹은 내가 가지고 있는 힘(=마음)이 소진되었 을 때 힘이 든다고 말을 하는 것 같다. 육체의 힘과 내면의 힘.

내면의 힘이 약할수록 힘이 든다 라는 말을 더 자주 하는 것 같고 내면의 힘이 강할수록 힘이 든다 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잘 되지 않을 때, 내가 원하고 바라는 상황이 오지 않을 때 혹은 죽을 만큼 열심히 했는데 쉬지도 못하고 또 해야만 할 때, 그럴 때 힘이 든다는 마음이 올라오게 되고 힘이 든다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내 마음수련의 실체는 면벽수행

 

평소 그냥 습관처럼 그냥 했던 말인데 오늘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힘이 든다는 말의 실체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는 것 같다. 힘이 드는 상황을 세세하게 묘사하지 않더라도 힘이 든다는 것은 내 내면의 마음에서 그것을 견디지 못하거나 아등바등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무겁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고, 그렇게 마음이 무거우면 실제 몸도 무겁게 느껴지니 힘이 든다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 반면에 우리는 누군가의 마음이 무거워 보이고, 힘겨워 할 때면 의례히 건네는 말이 바로 “힘내세요~ 힘내시고요~~ 힘내~~!!” 이다. 그것도 왜 그런 걸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상대가 힘들어 할 때 나는 충분히 그 마음이 어떨지 공감하고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힘을 내라고 말을 건네게 된다. 또 우리는 마음의 짐이 무겁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에 그것을 떨쳐 버리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기 때문에 “힘을 내~” 라고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마음수련의 실체는 어두운 문은 지나가는 과정

 

근데 사실 힘들어, 그리고 힘내라는 표현은 우리가 살면서 그냥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지 누가 가르쳐 준 적은 없다.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고, 알려주지 않았지만 정말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쓰는 것 같다. 누구나 알고 있는 말. 누구나 똑같이 겪는 상황. 신기하게도 ‘사람의 마음은 정말 똑같구나’를 알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나는 마음이 너무 무겁고 힘이 들어서 마음수련 명상을 시작했다. 명상을 하면서 힘들어 했던 내 모습을 되돌아보면 언제나 똑같았다. 혼자 애가 타고 혼자 애 쓰고 혼자 그렇게 답답해 하면서 남 탓, 세상 탓 하면서 온갖 부정적인 마음 덩어리를 짊어 지고 있으니 마음이 무겁고 힘겨웠던 것이다. 그 짐을 누군가와 함께 나눠 들었으면 힘이 안들었을텐데, 그 짐을 내려 놓았다면 무겁게 들 필요가 없었을 텐데. 참 멍청하게 살아왔던 거 같다. 정말 이렇게 무거운 것을 끝까지 가지고 어떻게 살았을까 싶다.

마음수련의 실체는 하늘처럼 되는 것

 

진짜 이 마음수련 명상을 만난 것은 내 인생 통틀어서 정말로 다행 중에 다행이고, 행운 중 행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이 마음수련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 마음의 무게를 버티다 버티다 결국 견디지 못하고 깔려 죽었을 것이다. 무겁다고 난리 치면서 말이다. 괴로움과 답답한 그 무거운 마음의 짐들을 다 빼내고, 또 그 짐들을 혼자 지려 하지 않고 주위 사람들과 함께 나눠 들게 되었으니 지금은 너무 가볍다. 쉽게 말해서 힘든 마음이 올라오면 그것을 꺼내어 누군가에게 털어 놓을 수 있고, 또 그것을 나눠 들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함께 하자고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고, 그리고 끝까지 갖고 있던 욕심과 집착을 이제 그만 포기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으니 너무 다행이지 않은가. 마음수련 실체의 힘은 바로 거기서 나오는 것 같다. 변화의 시작은 나를 짓누르고 있던 그 무거운 마음을 내려 놓으면서부터 이고, 그 마음을 없애고 나면 홀가분해지고 가벼워지고 표정도 좋아지고 기분이 좋아져서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구나 힘든 상황은 오기 마련이다. 힘들어 할 때만큼 마음이 괴로울 수가 없다. 그 무거운 마음들 다 빼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살자. 내가 힘을 내는 방법은 무거운 짐을 없애거나 그 무거운 짐을 내려 놓거나 그 짐을 함께 나눠 드는 것. 반드시 명심해야겠다.

마음수련해서 더 이상해졌다는 말 들어본 적 있나요?

 

 

“마음수련 했으면서 왜 그래?”

“마음수련 했다면서 어떻게 변한 게 없니?”

“마음수련해서 너 더 이상해.”

 

사진 (2)
좋아지려고 하다가 나빠진 격

 

위의 질문은 마음수련 명상을 오래 한 내가 주변에서 쉽게 듣는 말이고, 나 스스로도 문득 드는 생각이다.

 

 

분명 처음엔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었다.


행동도, 마음도 이전과는 정말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 만큼 내 인생에서 과히 황금빛이라 생각할 만큼 좋았던 적이 분명 있었다. 표정은 늘 밝았고, 어릴 적 새 신발을 신고 뛰어다니던 시절처럼 마음도 너무 가벼웠다. 행복하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너무 신기했고 매일 매일이 참 좋았었다. 그러다 한해 두해 지나면서,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내 표정은 점점 어두워지고 몸은 천근만근 무겁고 말수도 줄고 한숨은 늘었다.
매너리즘에 빠진 걸까? 그 당시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상황과 감정들이 나를 서서히 우울함 속으로 몰고 가는 것 같았다.

마음수련을 계속 하고 있었지만 그런 상황들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내가 비정상일까?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내가 정말 하나도 안 바뀐 건가? 내가 나를 봐도 더 이상해 진 것만 같았다.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그런 보통사람들과는 확실히 달랐던 것 같았다. 자기 주장이 더 심해졌고, 더 남을 배려하지 않고, 오직 내 생각만이 옳다고만 믿어버린 채, 그 속에서 한걸음도 못 나오는 신세 같았다.

 

사진 (7)
매일매일 이렇게 맑았는데

 

분명 그랬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배려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늘 배려하려고 노력했다. 그게 좋으니까, 그래야 하니까, 그래서 난 항상 배려를 했다.
근데 나만 유독 배려하는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은 적당히 자기 것 챙기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 모습들에 나는 점점 왜 나만 배려를 하지, 아무도 몰라주는데. 남들은 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데 나만 이럴 필요 있나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이제 나만 배려하고, 내가 손해보는 짓은 안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다.
나도 저들처럼 똑같이 할거야. 나보고 뭐라 하기만 해봐 하면서 말이다. 결국 나는 점점 내가 손해보는 것은 안하려고 하고 점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지내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듣게 되는 말이 바로 마음수련 하는데 어떻게 그래?”, “마음수련 하면 그렇게 이기적으로 되는 거니?” 이다.
분명 나도 남들처럼 똑같이 자기 실속 챙기고 하고 싶은 대로 한 것인데 자기들은 그렇게 하면서 왜 나한테만 그러지? 하면서 스스로를 정당화했다.

 

사진 (5)
막막한 회색벽에 갖힌 듯 답답하다

 

또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마음이 좋을 때는 참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누가 보든 말든 최선을 다하고 좀더 성실하게, 좀더 성의 있게 노력했다. 그런데 일이란 게 잘 해서 결과가 좋을 때도 있고, 잘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을 때도 있지 않은가.

근데 항상 결과만 보고 제대로 안했다고, 지적 받거나 혼나면 정말 너무 싫은 거다. 최선을 다했는데, 정말 남들보다 더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왜 결과가 안좋아서 이렇게 인정도 못 받고 찬밥 신세가 되는 것 같은지.

결국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열심히 해봐야 뭐해. 어차피 잘 안되는데. 나도 남들처럼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내 실속 챙기고 해야겠다. 그렇게 마음 먹게 된다. 그러다 결국 또 듣게 되는 소리는 너 마음수련해서 더 이상해진 거 알아?”, “어떻게 너는 열심히도 안하고 니 실속만 챙기니?” 이다. 아닌데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닌데. 그래도 열심히 한적은 있었는데. 결국 후회하고, 속상해 하고 답답해 하게 된다.

 

이것 말고도 더 많은 상황들이 있다.


상대에게 말을 할 때나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에서 말이다.
왠지 혼자 고립되어 있는 것 같고 표정은 늘 어둡고 모음 너무 무겁고 한숨만 푹푹 쉬게 되고. 마음수련 했는데 더 힘들어 졌다고 온갖 투정과 부정적인 생각들로 어느덧 가득 차게 된다.

그런데 이 상황들을 잘 되돌아보면 정말 어이가 없다.
나는 누구를 위해 배려하고, 누구를 위해 열심히 하고 그랬던 것일까?
내가 했던 행동과 말들이 정말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만약 내가 아닌 남들을 위한 배려였다면 섭섭함과 서운함이 있었을까?
내가 일을 할 때 오직 결과만을 생각하고 열심히 했다면 그렇게 혼나거나 지적 받는 일이 있었을까?

냉정하게 말해서 나는 상대를 배려 하는 것도, 열심히 했던 것도 모두 내 기분이 좋으니까, 그렇게 착하게 열심히 하면 내가 좋으니까, 오직 나를 위해서만 했던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보며 저들은 왜 자기 밖에 모를까라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그렇게 살고 있었다. 내가 제일 나만을 위해서 살았으니 돌아오는 말도 그런 부정적인 말 뿐이었던 것이다.

 

사진 (4)
나의 부정적인 생각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정말 대단한 착각 속에 살았다.


조금만 돌아보면 어떻게 이런 착각을 하면서 살았는지 답이 나온다.
분명히 나는 마음수련해서 조금 비웠다고 다 버린 줄 착각하며, 그 기분 좋은 마음에 취해서 살아간 것이다.

내 마음속에는 아직 깊고도 깊은 철저히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가 제일 맞다 하는 그 부정적인 마음의 뿌리가 남아있는데, 조금 버렸다고, 조금 비워졌다고 착각해서 다 끝난 줄 안 것이다.
사실은 아직 있는데. 난 그렇게 아직 내 마음이 있음에도 있는지 모르고 그렇게 대충, 설렁설렁 마음수련을 하다가 이지경까지 온 것이었다.

나 외에는 다 틀렸고, 나 외에는 다 이상한 사람이라고. 그런 엄청난 착각 속에,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상대를 미워하고, 동시에 왜 나를 존중해 주지 않지? 어떻게 사람들이 이렇게 배려와 이해가 없지? 라고 하면서 후회하고, 한숨짓고 포기하려 하고. 그만두고 싶고, 도망치고 싶고, 어디론가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떠나버리고 싶은, 그런 부정적인 마음들로 다시 가득 차버린다.

정작 내 마음은 못 본채. 오로지 눈에 보이는 대로 시비 하며 지냈던 것만 같다. 아주 깜깜한 지하 수만 키로 아래에서 그렇게 나 혼자, 나 홀로. 그 속이 얼마나 깜깜한 지도 모른 채, 그렇게 하루 하루 지냈다. 점점 마음수련 하기 전 아주 힘들었던 때보다 훨씬 더 이상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도덕도 없고, 상식도 없는, 그냥 자기 밖에 모르는 꼴통. 나를 돌아보지도 못하고, 비워 내지도 못하고 그냥 꽉 막힌 지하 수만 키로에 홀로 갇혀 살아가고 있었다.

 

사진 (1)
교도소보다 내 마음 속이 더 괴롭다

 

표정도 어둡고, 의욕도 없고, 그냥 걸어 다니는 시체처럼 아무 뜻과 의미도 없이 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쯤 누군가 구세주처럼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물병에 시커먼 흙탕물이 가득 차 있으면,
그 시커먼 물과 물병을 모두 버려야 하는데,
보자기로 그 물병을 가린 채 너는 물병이 없는 척, 그렇게 살고 있다.

 

 

정말 나의 모든 상황이 한번에 정리되는 말이었다.
나는 정말로 마음수련을 그렇게 했던 것이다. 보자기로 덮어 버리고 마음 없다고, 마음수련 다 했다고 하면서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 스스로를 고립시켜 놓고는 내가 마음수련해서 더 이상해졌다고, 마음수련하면 이상하게 되는 거 같다며, 옛날에는 이정도까진 아니었다며이런 미친 소리를 늘어 놓았던 것이다.

이게 정말 정상인가? 매우 심각한 상태이지 않은가? 살짝 비워진 그 기분에 취해 마음수련을 실제 오래 한적도 없었으면서 남 탓하며 지냈으니 스스로 못 버티는 지경까지 온 게 아닐까 싶다. 진짜 너무 힘들었고 너무 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스스로를 오래 탓하다 보니 너무 힘들었다.

정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힘들고 나니 정말 이대로는 못살겠다며 정신이 차려 지기 시작했다. 예전에 마음수련을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말이다.
이렇게 가다가 정말 허망하게 죽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꽤 진지하게 마음수련을 다시 해볼 마음이 생겼다. 진짜 내 실체를 인정하고 그 실체를 반드시 버리겠다는 각오가 생기니까 그때부터 진짜 내 마음이 잘 보였고 마음들이 진짜 버려지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마음이 조금씩 버려지다 보니 다시 기분도 좋아지고 도 잘 쉬어 지고 몸도 가벼워졌다.

하지만 이제 이것이 가장 조심해야 하는 기분이라는 것을 안다.
같은 실수를 또 하면 안되니까. 정말 다 버려지게 되면 행동이 바뀌게 될 테니까.
내 행동이, 내 습관이 여전히 나를 향하고 있으면 그건 아직 다 버려지지 않은 것이니까.

 

사진 (8)
내 마음수련의 실체는 나로부터 벗어나는 것

내 생각, 내 주장, 내 감정이 과연 상대와 세상을 위한 것인지, 오직 나를 위한 것인지 항상 되돌아보고 점검할 필요가 있다.
마음수련을 하면서 쉽게 빠질 수 있는 오류가 바로 지금 하고 있는 내 생각이 맞고, 내 기분이 중요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 하지 않는 그런 마음과 행동이다.

바로 이 상태를 조심하고 경계해야 한다. 지금 누구를 탓하고 있는지 잘 생각해보라.
내가 무슨 마음으로 지금의 행동을 하고, 지금의 감정이 어떤 마음으로 비롯되었는지 그 맥락을 잘 되돌아봐야 한다.

마음수련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자기를 돌아보고 그 마음을 버리는 곳이다. 조금 비워 졌다고, 조금 기분 좋았다고 끝이 아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그저 옛 속담이 아님을 절절하게 깨닫는 것 같다. 비워질수록 겸손해지고, 비워 질수록 바르게 살아가게 된다.

그게 마음수련이 가진 힘이고, 가장 큰 장점이다. 마음수련을 오래 했다고, 마음수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내가 판단 하려 하지 말고, 내 위주로 생각 하려 하지 말자. 다 함께 사는 세상을 자기 혼자 따로 살지 말자. 좀더 명확하고, 객관적으로 자기의 실체를 돌아보고 인정하고, 반드시 그 마음들을 비우면 좋겠다.

그래서 참 행복을 느끼며 살았으면 좋겠다

 

마음수련 실체, 나의 동굴 체험기 2편

(이전 편에 이어)

화가 났을 때 닫아버리는 문

순간 나는 짜증나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고 입은 꾹 다물었지만 나도 모르게 주둥아리가 앞으로 튀어 나왔나 보다. 역시나 팀장은 그런 내게,

왜? 또 뭔데?

하아, 왜 말 을거냐. 나는 최대한 침착한 척 하며 말했다.

아니, 지금 뭐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좀 더 확실히 지금 어떤 부분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좀더 명확히 하고 넘어가자고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도저히 생각이 멈춰서 멍 때리게 됩니다

속마음은 짜증을 머금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끝내 가는데 갑자기 슝~ 하는 소리와 함께 볼펜이 내 심장 한가운데로 날아 왔다. (드라마에서나 보는 장면인 줄) 그리곤 고성이 오가기 시작했고

나는 ‘하아, 이렇게 되면 동굴인데 이거 어쩌나.’ 란 생각이 들었다. 이거 이대로면 백퍼 동굴로 들어간다. 나 동굴 이제 안 들어가려고 했는데 어떡하지 하면서 버티는데, 결국 항복을 하고야 만다.

팀장님. 저 못하겠습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저 빼주세요. 저 못할 것 같아요

 나는 그대로 질러버리고 회의실 문을 나왔다. 여기까지는 대략 이렇다. 회의 중에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고성이 오갔고, 한 명은 분노조절장애를 일으켰고, 또 다른 한명은 피해의식에 사로 잡힌 것이다. 보통 이런 상황이 오면 바로 동굴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왜냐면 서로 생각이 맞지 않아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이 부분은 다시 서로 차근차근 집고 넘어가면 된다. 근데 여기서 생각지 못했던 상황은 그렇게 회의실을 박차고 나오고 난 후 혼자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상황을 해결하지 못한 채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혼자 시간을 보내면 위험하다. 피해망상 중증인 내가 혼자 있다니. 결국 나는 이 상황이 오게 된 진짜 이유를 고민해보지도 않은 채 상대 탓을 해버리고 말았다.

 이건 폭력이야. 어떻게 나한테 그렇게 할 수 있지?

아무리 내가 잘못하고 짜증을 유발한다고 해도

어떻게 소리를 지르며 볼펜을 던질 수 있지?

마음수련 명상, 나의 동굴 체험기

이게 시발점이었다.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한 나는 그날 내내 혼자 있게 된다. 그리고 억울하다며 사수에게 메일을 남기고는 동굴로 발을 내딛게 된다. 또 다시 찾아온 동굴. 이번 동굴도 마찬가지다. 쓸쓸하고, 외롭고, 내편은 아무도 없고, 또 나는 실수를 하게 되었고, 여전히 바뀌지 않은 나를 마주한 채 한숨을 쉬며 혼자 내방 내 이불 속으로 들어가듯 혼자 깊숙이 들어가 버린다

어둡다.

춥다.

배고프다

외롭다

저 밖의 빛이 너무 뜨거울 것 같다

난 어둠이 좋다

난 여기가 잘 어울리는 놈이다

그래

나는 동굴매니아지..

이번 생은 역시나 바뀌질 않는구나

머릿속을 맴도는 저런 생각들 때문에 나는 점점 피폐해져가고 얼굴에 회색 빛이 감돈다. 입은 계속 튀어나온 채로 몸 밖의 에너지는 “나 동굴이야~ 잘들 살아!!” 하면서 말이다.

호기심 많은 벽

이 동굴을 나오기 위한 방법은 언제나 그랬듯 명상이다. 내가 하고 있는 마음수련 명상. 마음수련실체는 나를 되돌아보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방법대로 또 그 마음들을 없앨 수도 있다. 지금 내게 필요하지 않은 마음, 허상과 같은 그런 망상들을 마법처럼 사라지게 해준다. 물론 내가 제대로 하지 않고 띄엄띄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이따금씩 그 마음들이 올라오긴 하지만.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듯 하다.

피해망상은 정신적인 질환이 아니던가? 보통 사람들하고 나는 다르겠지. 암튼 동굴을 약간 미화시켰던 것 같기도 한데 사실 동굴은 정말 힘들다. 정말 고통이라고 할 정도로 사람이 피폐해 진다. 너무 너무 너무 힘이 든다. 마음적으로 말이다. 이번에도 그 고통을 직접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나 혼자 또 경험하고 있다. 이 동굴을. 나는 언제 이 완전한 동굴을 벗어날까? 오늘은 유독 좀 밝게 써본다. 최근 며칠간 정말 극한 어둠의 끝을 보아서 살짝 바깥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서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암튼 오늘도 나는 동굴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