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수련 실체, 나의 동굴 체험기 2편

(이전 편에 이어)

화가 났을 때 닫아버리는 문

순간 나는 짜증나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고 입은 꾹 다물었지만 나도 모르게 주둥아리가 앞으로 튀어 나왔나 보다. 역시나 팀장은 그런 내게,

왜? 또 뭔데?

하아, 왜 말 을거냐. 나는 최대한 침착한 척 하며 말했다.

아니, 지금 뭐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좀 더 확실히 지금 어떤 부분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좀더 명확히 하고 넘어가자고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도저히 생각이 멈춰서 멍 때리게 됩니다

속마음은 짜증을 머금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끝내 가는데 갑자기 슝~ 하는 소리와 함께 볼펜이 내 심장 한가운데로 날아 왔다. (드라마에서나 보는 장면인 줄) 그리곤 고성이 오가기 시작했고

나는 ‘하아, 이렇게 되면 동굴인데 이거 어쩌나.’ 란 생각이 들었다. 이거 이대로면 백퍼 동굴로 들어간다. 나 동굴 이제 안 들어가려고 했는데 어떡하지 하면서 버티는데, 결국 항복을 하고야 만다.

팀장님. 저 못하겠습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저 빼주세요. 저 못할 것 같아요

 나는 그대로 질러버리고 회의실 문을 나왔다. 여기까지는 대략 이렇다. 회의 중에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고성이 오갔고, 한 명은 분노조절장애를 일으켰고, 또 다른 한명은 피해의식에 사로 잡힌 것이다. 보통 이런 상황이 오면 바로 동굴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왜냐면 서로 생각이 맞지 않아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이 부분은 다시 서로 차근차근 집고 넘어가면 된다. 근데 여기서 생각지 못했던 상황은 그렇게 회의실을 박차고 나오고 난 후 혼자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상황을 해결하지 못한 채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혼자 시간을 보내면 위험하다. 피해망상 중증인 내가 혼자 있다니. 결국 나는 이 상황이 오게 된 진짜 이유를 고민해보지도 않은 채 상대 탓을 해버리고 말았다.

 이건 폭력이야. 어떻게 나한테 그렇게 할 수 있지?

아무리 내가 잘못하고 짜증을 유발한다고 해도

어떻게 소리를 지르며 볼펜을 던질 수 있지?

마음수련 명상, 나의 동굴 체험기

이게 시발점이었다.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한 나는 그날 내내 혼자 있게 된다. 그리고 억울하다며 사수에게 메일을 남기고는 동굴로 발을 내딛게 된다. 또 다시 찾아온 동굴. 이번 동굴도 마찬가지다. 쓸쓸하고, 외롭고, 내편은 아무도 없고, 또 나는 실수를 하게 되었고, 여전히 바뀌지 않은 나를 마주한 채 한숨을 쉬며 혼자 내방 내 이불 속으로 들어가듯 혼자 깊숙이 들어가 버린다

어둡다.

춥다.

배고프다

외롭다

저 밖의 빛이 너무 뜨거울 것 같다

난 어둠이 좋다

난 여기가 잘 어울리는 놈이다

그래

나는 동굴매니아지..

이번 생은 역시나 바뀌질 않는구나

머릿속을 맴도는 저런 생각들 때문에 나는 점점 피폐해져가고 얼굴에 회색 빛이 감돈다. 입은 계속 튀어나온 채로 몸 밖의 에너지는 “나 동굴이야~ 잘들 살아!!” 하면서 말이다.

호기심 많은 벽

이 동굴을 나오기 위한 방법은 언제나 그랬듯 명상이다. 내가 하고 있는 마음수련 명상. 마음수련실체는 나를 되돌아보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방법대로 또 그 마음들을 없앨 수도 있다. 지금 내게 필요하지 않은 마음, 허상과 같은 그런 망상들을 마법처럼 사라지게 해준다. 물론 내가 제대로 하지 않고 띄엄띄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이따금씩 그 마음들이 올라오긴 하지만.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듯 하다.

피해망상은 정신적인 질환이 아니던가? 보통 사람들하고 나는 다르겠지. 암튼 동굴을 약간 미화시켰던 것 같기도 한데 사실 동굴은 정말 힘들다. 정말 고통이라고 할 정도로 사람이 피폐해 진다. 너무 너무 너무 힘이 든다. 마음적으로 말이다. 이번에도 그 고통을 직접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나 혼자 또 경험하고 있다. 이 동굴을. 나는 언제 이 완전한 동굴을 벗어날까? 오늘은 유독 좀 밝게 써본다. 최근 며칠간 정말 극한 어둠의 끝을 보아서 살짝 바깥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서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암튼 오늘도 나는 동굴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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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수련 실체, 나의 동굴 체험기

다시, 보통날 나의 동굴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은 다 알고 있다. 내가 마음수련을 했어도 가끔씩 동굴에 들어가 버리는 것을. 동굴로 들어가게 되면 나는 온몸에서 그 동굴 에너지를 뿜어 낸다.

‘아무도 말 걸지마.’

‘나 동굴이야. 아무하고도 말하고 싶지 않아.’

‘지금 죽을 것만 같아. 그러니 나 좀 냅둬.’

 이런 생각들이 아주 강력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굳이 내가 말하지 않아도, 저 마음들이 다 표출되어 모두들 단번에 알아차린다. “저 새끼, 또 동굴 들어갔네.” 라고 말이다.

이제는 다들 연례행사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별로 특이하게 생각하지도 않는 분위기다. 처음 동굴을 접했을 때는 주변 사람들은 내게 참 많은 관심을 가져줬었는데…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하고, 일부러 말도 걸어주고, 괜찮냐고 물어보고, 힘내라고 토닥거려주고. 평소 실없는 헛소리를 많이 해대던 친구가 갑자기 말이 없고 눈도 안 마주치니 얼마나 놀랬을까. 그러나 이 동굴이 반복되다 보니 다들 그러려니 하는 것 같다. 아무도 관심 가져 주지 않는다. 말그대로 노관심이다. 그래서 이곳에다 이야기 하려 한다. 누가 보든 상관없다. 나는 이야기 하고 싶기에, 내 이 억울함을 어딘가에는 속 시원하게 털어놓아야 살 것 같아서.

주인님 어디 계세요

사실 이번 동굴도 참 만만치가 않다. 상처가 좀 깊게 박혔다. 믿지 않겠지만 나는 상처를 잘 받는 성격이다. 흔히 말하는 유리멘탈이다. 사실 석 달 전에 엄청나게 깊은 동굴을 겨우 빠져 나왔었는데 3개월 만에 다시 동굴에 들어오다니 정말 어이가 없긴 하다. 이렇게 단시간에 다시 들어올 줄 정말 몰랐다. 그때는 정말 깊은 동굴이었는데 다행히 TVN 채널에서 ‘나의 아저씨’ 라는 드라마를 보고, 엄청나게 많은 눈물을 쏟아내고 나서야 동굴을 나올 수 있었다. 정말 ‘나의 아저씨’ 주인공들의 고군분투를 보면서 저런 사람도 힘내서 다시 꿋꿋이 살아가는데 나는 뭐라고 뭐가 그리 힘들다고 이렇게 못 버티는 거냐 그러면서, 스스로 토닥 한번 해주고 동굴을 나왔었는데 이번에는 또 어떤 계기로 나오게 될지 궁금하긴 하다.

암튼 자꾸 동굴, 동굴 하는데 내가 말하는 동굴의 실체가 뭐냐면 그냥 내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버리는게 동굴이다.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고, 겪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은 상태. 세상 모두가 내편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고 끊임없이 혼자 상처받았다고 생각하고 불쌍하게 생각하고, 억울해 하면서 혼자 자책하고 이불 속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 것처럼 편히 눕지도 못하고 옆으로 쪼그려 누워있거나 눈은 항상 땅을 향해 있고, 한숨은 2초에 한번씩 나오는 그런 상태. 그것이 바로 내 동굴 안의 실체이다.

 

03 직장생활

이번에도 역시나 완벽한 조건이 딱 떨어지니 바로 동굴로 들어가 버렸다. 어느 회의 시간이었는데 회의 도중 각이 딱 막히는 그런 순간이 있었다. 정말 답답한 상황이었고 그 적막함은 정말 나에겐 견디기 힘든 그런 찰나의 순간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그래서 사전에 분명히 요청을 드렸었다. 팀장에게 이런 상황처럼 생각이 막힐 수가 있으니 현재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 시켜 주고,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회의를 할지에 대해서 좀더 명확하게 집고 넘어가도록 하자고 분명히 말했었는데 또 우리의 대단하신 팀장님은 본인께서 추구하신 방향대로 밀어 붙이고 계시는 중이다. 아… 올 것 같다. 암이 올 것 같다는 불안한 생각이 든다. 여기서 내가 또 일을 그르치면 안되니까 처음 한 두 번은 그냥 넘어갔다. 그리고 나름 좋게 좋게 이야기를 건네기도 했다.

“이 부분에서 이런 부분의 논리가 좀 부족하니 좀더 확실하게 집고 넘어가면 큰 틀로 접근하는게 더 쉬울 것 같습니다.”

분명 이 얘기에는 모두 동의했었다. 팀장도 좋다고 했다. 근데 왠열, 회의가 진행되면 진행 될수록 계속 이런 말이 들린다.

“그래서? 그게 뭔데? 와 닿지가 않자나. 다른 거 뭐 없어?”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해? 우리 타겟은 뭔데? 이거..와 닿지가 않자나. 그건 그때 그냥 그렇다 치고 넘어 간 거지 픽스 안 했자나”

.와… 진짜… 대박… 분명 같이 확정하고 넘어 갔었는데. 이거다! 하고 모두 동의하고 다음 스텝으로 넘어 온 건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버렸다.

(다음 편에 계속)

 

언어폭력 하지 않기 위한 마음수련 실체

언어폭력에 대한 책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

되게 안 좋은 상황들은 이따금씩 찾아오는 것이 아닌 폭풍처럼 몰아서 오는 경우가 많다. 그 안좋은 상황 중에서 가장 쉽게 상처가 되었던 것은 바로 우리가 일상처럼 나누는 대화 속에서 큰 상처를 받고는 한다. 우리가 나누는 언어 속에, 대화 속에 대체 어떤 말들이 듣는 이로 하여금 상처가 되는 걸까?

저는 운전을 더럽게 못한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정말로 제 운전 실력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죠.

아마 세뇌된 것 같아요.

그거 아세요?

운전대를 잡은 지난 27년간,

사고를 내기는커녕

딱지 한번 뗀 적이 없다니까요

발췌내용: 언어폭력_저자 퍼트리샤 에반스

책에서 말하는 언어는 폭력의 대상이라고 단정 짓는다. 이 언어폭력들은 분노 폭발이나 욕하기처럼 대놓고 행해질 수도 있고, 세뇌처럼 아주 미묘하고 은밀하게 행해질 수도 있다고 한다

노골적인 언어폭력은 주로 책임 전가나 비난을 통해 상대에게 혼란을 일으키기도 하고, 은밀한 언어폭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공격으로, 상대를 더 큰 혼란에 빠뜨리게 된다. 은밀한 언어폭력은 진심으로 걱정하는 듯한 목소리로 상대방을 깎아 내리는 식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가 아주 조용하게, 심사숙고한 듯

우리가 같이 독서토론을 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말이야, 다른 사람은 다 이해하는데 당신은 이해 못하는 흔한 문장들이 있기 때문이야”

라고 말했을 때, 저는 ‘아, 내 그런 점 때문에 우리 대화에 그렇게 어려움을 겪었나 보다’ 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고통과 절망감을 느꼈어요.

그렇다면 제가 느끼는 모든 고통은 결국 다 제 잘못 때문인 거니까요.

발췌내용: 언어폭력_저자 퍼트리샤 에반스

언어폭력의 실체

대화를 나누다 보면 서로 막히는 경우가 분명 있을 것이다. 했던 말을 반복하고 있거나 또 어느 쪽은 계속 말을 하는 대도 알아듣지 못하고 있다거나 이런 상황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면 말을 내뱉게 되는 사람도, 말을 듣게 되는 사람도 모두가 기분이 좋지 않다. 반복해서 말을 하게 되는 사람은 짜증이 날 수도, 상대에 대한 실망감이 들 수가 있을 것이고, 반복해서 듣게 되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마음 속 깊은 피해의식에 사로 잡힐 수도 있다. 반복되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피해의식은 내 문제를 먼저 인식하기 전에 일방적으로 상대 탓과 상황을 탓을 하며 자신의 한계점을 설정 하고는 하는데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 설사 상대가 고함을 칠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주장해도, 나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 설사 상대가 농담으로 그런 것이라고 주장해도, 나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 내가 잘못했기 때문에 그가 고함을 친 것이라고 주장해도, 나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 그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고 주장해도, 나는 그 말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 그가 나에게 “항상 옳아야 직성이 풀린다”고 비난해도, 나는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 그가 나에게 “미친놈”이라고 해도 나는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백가지 폭력을 다 받아 들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 설사 내가 실수를 했다 해도, 더 이상의 폭력을 용인하지는 않겠다. 사소한 실수와, 무지에서 오는 실수에 상대가 불같이 화를 내거나 나를 깎아 내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

언어폭력 책 한구절

서로 간의 감정이 자주 격해지고, 상대의 말이 언어 폭력이라고 인식이 되는 순간 피해자는 엄청난 자기 보호에 들어가게 되고, 결국 그 모든 원인을 상대의 탓으로 돌리며 자기 스스로는 강력한 피해자 이기에 두 번 다시 그런 일을 겪지 않으리라 다짐 하기도 한다. 이미 감정적으로 한계점이 온 것이다. 자존감은 극도로 떨어지게 되며, 온통 부정적인 마음으로 덮여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대인기피증까지 오는 경우도 있다. 그런 상황이 지속되면 스스로를 엄청난 고립 속으로 넣어버려 세상 모든 것과 단절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렇게 온몸과 온 마음을 다해 부정적인 마음을 쏟아낸 후에는 한없이 외롭고, 우울한 상황이 오게 되고, 말수는 점점 줄어들며 작금의 이 상황이 비로소 자기 자신이 못나고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 진 것으로 생각하고, 자기에 대한 실망감과 이런 일상이 반복되는 삶이라고 단정 지으며, 끊임없는 자책을 하는 시기이다.

  • 왜 나는 항상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좀더 잘 설명 했다면 내 질문이나 생각 때문에 상대가 화를 내지는 않았을 테지.
  • 내 이해력에 문제가 없었다면, 상대가 말하는 것처럼 일을 ‘잘못’ 받아들이는 일은 없었을 거야. 그러나 그 문제가 무엇인지는 도무지 모르겠어.
  • 내가 무능하지 않았더라면, 말을 잘못 이해하거나 별 것 아닌 일을 크게 만들지 않았다면 이렇게 상처 받고 고통스러울 일도 없었겠지.
  • 상대는 다른 동료나 친구에게도 나한테 하는 것과 똑같이 행동하는데 그들은 그런 것을 문제 삼지 않으므로 문제가 있는 쪽은 바로 나였어.
  • 나에게 뭔가 결핍이나 결함이 있기 때문에 쓸데없이 힘들어 하는 것 같아.

마음수련 언어폭력의 실체

자기 스스로를 탓하면서 겪게 되는 감정의 경험은 자기자신을 완벽하게 고립시키며, 살아왔던 삶 전체를 부정하게 되고, 후회하게 된다. 결국 지금 마음이 너무 힘들다고 단정하여, 말수는 급격히 줄어들며 몸에 힘이 빠지고, 하루하루가 그야말로 고통의 시기가 찾아 오게 된다. 이처럼 언어 폭력에 피해를 입은 당사자는 특히나 이런 삶이 꽤 반복적이었던 사람은 정신적으로 많이 피폐해 져 있으며, 멘탈은 아주 얇은 유리처럼 언제 깨질지 모르는 매우 조심스러운 상태라고 할 수 있고, 본인 스스로도 여러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되며, 아주 나약한 자신을 불쌍히 여기며 살아가게 된다. 언어폭력의 실체는 나도 모르게 상대의 자존감을 무너뜨릴 수 있는 아주 심각한 행위이며, 특히 가해자일 경우 자기가 했던 말때문에 상대가 어떤 감정상태를 겪게 되는지 전혀 알지를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행위를 충분히 사전이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내가 어떤 말을 자주 하는지, 내가 어떤 행동을 반복해서 하는지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내가 한 말보다는 내가 보고 들었던 말을 정확하게 기억하기 때문에 평소에 내가 어떤 패턴으로 행동하고 말을 하는지 자기자신을 되돌아볼 필요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꼭 필요할 것이다.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방법은 자기가 했던 행동을 천천히 되돌아보며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데…

언어폭력과 마음수련 실체

객관적으로 자기자신을 되돌아보는 방법 가운데는 명상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명상과는 다르게 자기 자신을 끊임 없이 되돌아보고 그런 마음을 아주 객관적인 시각에서 버릴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효과적인 명상이 마음수련 실체다. 나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자기가 했던 행동 말 등을 천천히 되돌아보게 되면 지금 나에게 벌어지고 있는 모든 상황에 대해 제대로 인식 할 수 있게 된다. 내가 하는 행동과 말이 정말 철저히 내 중심적으로만 이뤄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정말 그동안 내가 상대를 배려 했다거나,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이야 생각했던 그 모든 것들이 객관적으로 나를 돌아보는 순간 거짓임을 마주하게 되는 게 마음수련 실체다.

나는 늘 피해자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또다른 누군가에게 똑같이 행동하고 있었어

내게 심한 말을 했던 상대만 줄곧 미워했지만 결국 그 원인 제공은 내가 한 것 이었어

지금의 상황이 힘들다고 했지만 사실 나 혼자만 다르게 생각하고 있던 거야

나는 충분히 부족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되는 거였어

실제로 내 마음을 정말 진지하게 돌아본다면, 내가 겪고 있는 상황과 마음들이 사실 별 것 아닌 것이라고 생각 할 수 있는 큰 마음을 얻게 된다. 거기다 그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피해의식과 같은 마음들은 마음수련 실체로 버릴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힘들다고 하는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결국 나에게 벌어지는 상황은 내 마음을 바뀌었을 때만이 변화 시킬 수가 있다. 상대에게 좀더 솔직해지고, 내 생각, 내 마음을 좀더 진중하고 차분하게 설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상대는 내 말을 진중하게 듣게 되고, 이해해줄 수 있게 된다. 내가 안 바뀌면 절대 상대와 상황을 변화 시킬 수 없다.

언어폭력과 내 마음 돌아보기

언어폭력은 절대 해서는 안될 행동임은 분명하다. 언어폭력을 당했을 때 그 마음의 상처는 직접 당해보지 않고서는 절대 모른다. 그리고 한번 다친 상처의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 자기가 당해보지 않으면 절대 헤아릴 수 없다. 언어폭력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아무리 똑똑하고 사리분별력이 좋고 생각이 깊은 사람도 언제 언어폭력이 일어날지는 절대 예측하지 못하며, 대게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폭력을 당할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인식하자. 분명한 것은 내가 듣기 싫은 말은 상대도 듣기 싫다. 내가 보기 싫은 행동은 상대도 보기 싫어한다. 그러니 절대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말자. 언젠가 자신에게 다시 돌아올 상처가 될 수 있으니.

 

마음수련 실체, 행복에 대하여

사람들은 누구나가 행복이란 단어를 좋아한다. 지금이 행복하다면, 과연 행복한 삶을 위해 쉴 틈 없이 달리고 있을까. 내가 처한 현실이 대부분 불만족스럽기에 그 부족함을 채우고 싶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 중 가장 높은 단계의 개념이 행복 추구가 아닐까 싶다.

그럼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어떤 사람이냐고? 나 역시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막연한 행복의 실체를 잡기 위해 긴 시간을 달려온 게 사실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친구들과 만나고, 대학에 진학하고, 직장을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고… 쳇바퀴처럼 도는 삶에서 내가 추구하는 가치의 끝은 어디인가.

마음수련, 행복의 실체에 대하여

사실 그것보다 앞선 근본적인 의문은 내가 진정으로 무얼 하고 싶은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 모르겠다는 것이다. 내 스스로가 원하는 것에 대한 불확신이… 현재, 그리고 나아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자꾸만 공허하고 허전한 마음이 들게 된다.

더 확장시켜 보자면 그럴수록 잘 살고 있는 것만 같은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게 되고, 눈치보게 되고, 움츠러들고 또 그럴수록 내 자존감은 낮아지고…이러한 감정과 생각들이 돌고 돌아 제자리에 머무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OTL… 그래서 현재는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수련 실체를 찾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비누방울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것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그럼 내 행복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누구나가 꿈꾸는 그것은 어떤 감정이며, 어떻게 하면 얻어질 수 있는 것일까. 오랜 시간 행복에 대해 연구한 심리학자들 역시 여러 방면에서 행복해지는 삶의 조건에 대해 고민해왔다. 충분한 소득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하는 일반론에서부터, 적절한 취미생활, 수면, 가정환경 등이 생활에 영향을 가져온다는 연구 결과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그렇다면 과연 위에서 언급한 그러한 조건들이 충족 되어지면 사람은 누구나 행복의 실체를 잡을 수 있을까? 세계적 행복학자인 Raut Veenhoven은 말했다. 위의 조건들이 맞춰진다고 해도 모두가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바로 개인 감정의 특성 때문이라고. 즉, Happiness는 특정한 어떤 감정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매우 ‘주관적인’ 만족감이기 때문에, 주위에서 보기에 최고의 조건을 가지고 있더라도, 본인 스스로 불만족스러우면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결국 행복의 전제조건은 어떤 환경, 경제적 조건 등이 아닌 내가 무엇을 추구하고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본인 스스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이를 통해 자기 자신에게 알맞은 삶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짚어가야 할 것은 내 자신을 어떻게 알아가느냐 인데…나의 경우를 살펴보면 이 해답을 마음수련 실체를 통해 조금씩 알아가게 된 것 같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 어떤 감정들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지…차근차근 나를 돌아보는 시간들이 꼭 필요했었다고나 할까. 한 마디로 내 자신을 돌아보는 것! 그리고 나란 인간의 실체를 파악하고, 그것을 형성하는 생각들을 버려나가는 것. 이를 통해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 진정한 내 자신을 마주하게 되고, 내면으로부터의 확신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사실 그 어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의 행복이니까.

마음수련을 통해 만나는 행복의 실체

그래서 지금 어떠냐고? I’m Happy! 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마음수련, 나도 모르게 하는 실수들의 실체

마음수련, 나도 모르게 하는 실수들의 실체

작은 실수부터 큰 실수까지 나의 삶은 내내 크고 작은 실수투성이다. 무심코 툭 내뱉은 말 때문에 곤욕을 치르거나 아무 생각 없이 행동을 해서 아주 난감한 상황을 만들거나 나도 모르게 한 행동 때문에 주위를 놀래키곤 했다.

초등학교 4학년때인가, 그래 4학년. 박영희 선생님이 담임이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하루는 우리 반 애들이 숙제를 많이 안해와서 선생님이 매우 화가 나셨었다. 선생님은 너네 뭐야. 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 단체로 숙제도 안하고. 도대체 문제가 뭐야? 라고 하시며 화를 내셨는데 제일 앞자리에 앉아 있던 내가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을 했다.

선생님이 잘못했겠지.”

순간 정적. 선생님이 순간 나를 탁 쳐다보시며 한참을 그대로 바라보셨다. 나도 너무 놀래서 선생님을 계속 쳐다 봤던것 같다. 머리 속이 너무 바빴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한거지? 선생님한테 뭐야. 내가 미쳤나? 대체 왜…’ 선생님은 결국 나를 부르셨고 수많은 욕과 함께 약 30분 넘게 쳐 맞았던 기억이 난다. 때리던 선생님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셨던 것 같고, 맞고 있던 나 또한 너무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못하고 계속 맞고만 있었던 것 같다.

무심코 툭 튀어나온 말의 실체. 정말 다시 생각해봐도 의도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어떻게 미치지 않고서야 선생님한테 대놓고 ‘당신이 잘못했자나’ 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분명 그것은 실수다. 물론 어린시절 선생님은 존경의 대상이고 믿고 따르는 대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서운 존재, 나를 귀찮게 하는 존재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무의식 속에 선생님도 한번 당해도 싸다는 생각을 했을 테고, 그 마음이 결국 한 순간 표출되었을 지도 모른다. 무의식 속에 있었다해도 그것을 표현했다는 것 자체가 그 당시 엄청 큰 충격이었다. 말 그대로 엄청난 실수였다.

 

말실수의 실체

최근에도 기억에 남을만한 실수를 했었다. 내 친구 동식이랑 있을 때의 일이다. 동식이는 살면서 단 한번도 여자친구가 없는 기간이 없을 정도로 연애 중독인 친구다. 동식이랑 홍대카페에서 만나기로 했고, 그 자리에 여전히 동식이는 여친과 함께 나왔다. 나는 당연히 최근에 얘기한 그 친구려니 생각하고 “동식이랑 사귀니까 어때요? 재밌죠?”라고 했는데 순간 짧은 정적이 흐르면서 하는 말이 “사귀는 사이 아닌데요?”라고 하는 거다. 헉! “아,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 굉장히 뻘쭘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동식이는 내게 “이 형이 미쳤나. 왜 안하던 오바를 해! 좀 조용히 있어, 좀. 제발!”라고 하는 거다. 나는 진짜 사귀는 것처럼 보여서 한 말인데… 에이… 진짜…

그 후 동식이한테 연락을 받았고 그 때 그 사람이랑 사귀게 되었다고 했다. 하… 참… 이건 또 뭐냐… 그때 그 뻘쭘과 함께 짜증이 막 올라왔다. “거 봐라. 너네 딱 봐도 그렇게 보였는데 와 사람하나 이상한 사람 만들고 진짜” 그러면서 욕을 해댔었다.

그리고 얼마 전 동식이를 만났다. 그 때 만났던 그 사귀게 되었다던 그 여친이 같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냈다. “안녕하세요~ 그때 동식이랑 썸 탈 때보다 지금 더 이뻐지셨네요~~호호호” 그런데 또다시 정적이 오는 거다. ‘설마… 뭐지? 얘네 왜 이러지?’ 옆 자리에 있는 동식이에게 카톡이 왔다. “형, 나 얘랑 헤어졌어. 제발 입 좀 다물자. 제발!”

와, 내 참 어이가 없어서. 대체 이건 내가 실수한 게 맞나 싶었다. 이건 내 실수라고 하기에는 상황이 정말 야속한 것 아닌가? 그렇게 난 또 자리를 불편하게 만들게 되었고 정말 너무 황당 스러웠다. 하지만 상황적으로는 내가 또 실수를 한 것이 “죄송해요. 제가 일부러 실수를 하려고 태어난 사람 같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라고 정중히 사과하고 그냥 조용히 처묵처묵 했던 것 같다.

 

실수 또로록

 

이런 실수에서 난 정말 ‘자기가 알고 생각하는 것 밖에 말하고 행동할 수 없구나’ 를 느끼게 된다. 결국 내가 봐온 기억이 전부이고, 내가 하는 생각은 절대 정답일 리가 없다는 것이다. 내 생각이 정답이라고 확신을 갖는 순간, 실수가 찾아 오는 것이 아닐까 란 생각도 든다. 그동안 했던 실수들을 되돌아보면 크던 작던 간에 나도 모르게 했던 행동과 말이 거의 대부분이어서 다소 억울하기도 하고, 정말 되돌리고 싶을 만큼 후회스럽고, 자다가 이불 킥할 만큼 정말 떠올리기 싫은 기억들이 태반이다.

인생 선배들은 실수의 실체에 대해 말하길

“실수를 두려워하지 마라” / 알버트 아인슈타인

“살면서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는 실수할까 봐 계속 걱정하는 것이다” / 앨버트 하버드

“실수할 자유가 없는 자유란 가치가 없다” / 마하트마 간디

“우리가 하는 독창적인 일은 실수뿐이다” / 빌리 조엘

라고 하지만 막상 실수를 하게 되면 언제나 나를 위축되게 만들고, 후회하게 만들고, 부끄럽게 만든다. ‘내가 왜 그랬지?’ 하면서 말이다..

 

나란 인간

 

살면서 누구나 실수는 한다. 그렇지만 실수를 하지 말아야지 하는 것 보다 실수를 왜 하는지, 이런 실수에 대해 나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마음수련 명상 방법으로 실수하는 마음의 실체에 대해 좀더 깊게 들여다 보고자 한다.

 

  1. 대부분의 실수는 나도 모르게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수는 나도 모르게 하는 것이 아니다. 실수를 할 때는 나도 모르게 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놀라게 되고 그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그런데 정말 나도 모르게 그런 행동을 했을까? 어떤 이는 이런 행동 패턴을 무의식으로 인한 행동으로 단정짓곤 하지만 사실 무의식이라고 하는 것도 깊게 들어가보면 결국 내 마음 속 깊숙이 자리잡은 마음이다. 겉으로 들어나지 않은 마음, 결국 그 실체는 내 마음(=생각)이다.

무의식적으로 나온 행동이었기 때문에 내 잘못이 아니다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순간적으로 내뱉는 말이나 행동도 결국 그 생각(=마음)이 내 안에 있었기 때문에 표출 된 것일 뿐이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수많은 것들 중의 하나이고, 그 중에 어떤 것은 왜곡된 기억일 것이고. 그런 수많은 복잡한 기억들 중 하나가 어떤 상황과 맞물려 툭 튀어 나올 때 말 실수, 행동 실수 등이 나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수가 나온 상황, 기억 등을 떠올려보면 왜 실수 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고, 이렇게 돌아볼 수 있기에 실수의 원인을 찾을 수 있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실수와 우울감

  1. 고작 실수 하나 때문에 자기 속으로 기어 들어가 우울하게 지낼텐가?

사실 이 질문은 내가 스스로 가장 많이 하는 행동을 역으로 표현 한 것이다. 자존감이 별로 없고, 소심하고, 열등감이 좀 많은 유형의 성격을 가진 사람은 대부분 실수에 대해 엄청 깊게, 오랫동안생각하고, 많은 후회와 감정의 상처를 받는 것 같다. 실수를 하면 에이..썅…하고 그냥 훅 넘어 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나는 속으로 끙끙 앓는다. 도대체 왜 이럴까?

돌아보면 나는 언제나 잘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일도 잘해서 칭찬받고 싶었고,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이런 욕심 때문에 실수는 더더욱 해선 안되는 사람이었다, 난. 그래서 실수를 해서는 안된다는 강박이 있었고 실수를 했을 땐 남들보다 훨씬 큰 상실감이 자리 잡는 것 같다. 실수를 그 즉시 인정하지 못하고, 자기 마음 속으로 계속 끌려가는 마음을 깊게 들여다 보면 무의식 중에 결국 앞서 얘기한 내 욕심들, ‘나는 잘해야 해. 나는 칭찬받아야 해. 사람들은 날 좋아해야 해.’등의 욕심들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나인데 이런 저런 사람으로 보여 지길 기대하는 마음, 그 마음은 곧 실제 존재하는 나를 부정하고, 상상 속의 나를 하나 만들어 놓고 그 사람으로 살길 바라는 망상 속에 비롯된 것이다. 나는 그것이 내 망상일 뿐이고,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람들

다행히 마음수련 명상을 만나 그런 나를 인정하고 버릴 수 있었지만. 버리지 못하고 계속 간직하면서 살았다면 나는 여전히 실수를 두려워하고, 어떤 사람으로 비춰 지기를 바라며 하루하루 내가 아닌 남으로 살았을 것이다. 지금에서야 말할 수 있지만 사람들은 사실 나란 인간에 큰 기대가 없다. 내가 무슨 실수를 하건(물론 순간에는 살짝 짜증이나 화가 나겠지만) 그냥 그뿐이다. 내가 뭘 하든 자기들 인생에서 나란 사람이 차지하지는 비중이 얼마 되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내가 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 사람들도 어차피 다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지 않을까?

 

아무튼!! 고작 실수 하나 때문에 자기 속으로 기어 들어가 우울하게 지낼텐가?

실수는 언제나 불현듯 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그럴 때 실수를 쿨하게 인정하고(혼날 것은 빨리 혼나고!!) 그리고 그 실수에서 재빨리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마음수련 실체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실수를 왜 하게 되었는지 되돌아보고, 원인을 찾고, 또 그 마음을 버리면 되겠지만 명상을 하지 않더라도 그런 마음에서 빨리 벗어 날수 있도록 스스로의 방법을 찾길 바란다. 세상은 내가 오늘도 실수를 하거나 말거나, 언제나 그랬듯 계속 지금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으니까. 나만 빨리 그 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최선을 다하길 바래본다.

 

 

마음수련, 외로움 그 쓸쓸함의 실체

마음수련, 외로움 그 쓸쓸함의 실체

잘 지내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외로움. 사람들과 같이 있어도 외롭고, 혼자 있으면 더 외롭고, 회사에 서도, 집에서도 그냥 외롭다. 나도, 사람들도 그렇게 가끔 외로움을 느끼는 것 같다. 한번씩 찾아오는 감기처럼.

흔히들 외로워 보이는 사람에게는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다. 다가가서 어깨를 툭 쳐 보기도 하고

무슨 일 있냐고 넌지시 대화를 해보려고 하기도 하고, 또 상대가 좋아했던 것들을 제안해 보기도 한다. 나도 외로워 봤기에 상대가 그 고독하고 쓸쓸한 외로움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바램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내가 그 마음을 잘 아니까.

마음수련, 외로움의 실체

그 외로워지는 기분을 말로 표현하긴 참 어려운 것 같다. 누군가 내게 “넌 왜 외로워?”라고 물어보면 ‘내가 왜 외롭지?’ 한참을 생각해 보지만 왜 외로운 지 쉽게 설명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외로움이란 정말 설명하기 힘든 마음이고, 결국 내 안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 물론 표면적으로 느껴지는 마음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누구도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는 것 같아, 같이 있지만 혼자 있는 것 같아, 내 편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 등. 세상사 혼자 사는 것처럼 고독하고 쓸쓸하고 조용하고 나 빼고 다 잘 지내는 것 같고 나만 이렇게 처량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끊임없이 자기 속으로 들어가 숨어버린다. 이런 마음으로 지내게 되니 그 뒷모습만 봐도 참 외로워 보인다고 말하는 것 같다.

loneliness and human

어쩌면 외롭다고 느끼는 본인 말고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다. 실제로 주변을 돌아보면 그런 나를 이해 하려고 노력하고 함께 하고 싶어하고 진심으로 도와주려고 하니 말이다. 이렇듯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본인 말고는 그런 나를 위로 해주려고 하지 그냥 내버려 두려고 하지는 않는다. 다만 지켜 보는 것일 뿐이다. 섣불리 다가가는 것 보다는 상대의 마음이 조금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거다. 다시 말해 나 지금 외롭다고 마음으로 소리치고 있는 사람에게 외로운 거 안다고, 하지만 네가 다가오지 말라고 소리치는 것 같아서 기다리고 있는 거라고 말이다.

 

brightness and loneliness

참 아이러니 한 것은 그렇게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하다고 하는 사람은 점점 고독을 향해 가고 있고, 세상과 연결된 문을 닫아 버린다. 그들은 “너 괜찮아?”라고 물어보면 백이면 백, ”응, 괜찮아.”라고 말한다. 안 괜찮으면서 정말 많이 외로우면서 절대 나 지금 외롭다고 말하지 않는다. 본인 스스로 조차 외롭다는 말을 되뇌이지 않는다. 나 스스로 외롭다고 인정해버리는 순간, 내가 너무 불쌍하기 때문이다. 너무 불쌍하고 처량한 자기 자신을 마주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에게 조차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 아주 철저히, 절대 그런 자기 자신을 인정하지 못한 채.

loneliness and road

모든 이가 이렇다는 건 아니다. 눈치 챘겠지만 이 이야기와 모든 사례는 철저히 내 이야기다. 유독 어릴 적부터 이런 마음에 자주 직면하게 되었고 그래서인지 남들보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강도가 더 심한 것 같다.

대체 이 외로운 마음이 뭐길래 이토록 자기 속에 갇혀 괴로워하게 되는 걸까? 속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이 마음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이 간절하면서 대체 왜 외롭다고 느끼는 걸까? 진짜 이 지긋지긋한 외로움의 실체는 무엇일까? 언젠가 마음수련 명상을 통해 이 외로움의 실체에 대해서 마음을 돌아봤었는데 당시에 정말 한참동안이나 돌아봤던 기억이 난다. 나는 왜 그토록 외로워 하는가? 외롭다라고 하는 마음은 사실 내 생각, 내 말, 내 행동에 상대가 동의하지 않아서 발생하게 되는 태도에서 비롯되 자기자신을 고립시키는 마음이다. 내 것과 맞지 않기에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 없다고 느끼고, 나만 빼고 다들 다 잘 지내는 것 같고. 그렇게 내 마음에 갇히게 되면서 부정적으로 나를 가두게 되는 마음, 절대 열고자 하지 않는 마음, 내 것을 포기 하고 싶지 않은 마음, 그 마음에 사로잡혀 세상에 혼자 내버려져 있는 것 같은 그런 괴로움.

내 외로움의 시작은 내 마음대로 뭔가 되지 않고, 그것을 지켜만 봐야 할 때 그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점점 나를 가두고 스스로 고립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한 줄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 끝없는 터널처럼 고독하고, 쓸쓸하다. 이처럼 외로움은 철저히 자기자신을 고립시켜 버린다. 그렇게 바라본 세상은 정말 나를 제외하고 모두다 행복해 보이고 모두다 즐거워 보인다. 그러면서 그 대열에 함께 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이내 곧 풀이 죽어 말없이 한숨을 쉬게 만든다. 끈적한 본드처럼 내 마음에 들러 붙어있는 그런 느낌, 이 지긋지긋하고 감기처럼 불쑥 한번씩 찾아오는 이 외로움을 우리는 어떻게 극복하는 걸까?

마음의 문을 열다

어떻게 그 마음이 극복되고 다시 일상처럼 모두와 함께 어울려 지냈는지 그 순간이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내 경우엔 마음수련을 통해 잘 돌아보니 결국 내가 그 닫혀버린 마음을 열려고 하는 순간, 그때부터 변화가 시작되었던 것 같다. 주변인들에게는 참 미안한 말이지만 누군가 나를 진심으로 위로 해준다고 해서 그 순간 마음이 열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스스로 이 곳에서 이 터널 같은 곳에서 벗어나겠다고 마음 먹는 순간, 그때서야 주변에서 해주는 말도 들리게 되고 또 내게 다가와 줘서 힘내라고 손 내밀어주는 사람들이 참 고맙고 미안하고 그랬던 것 같다. 그들은 나처럼 어디론가 떠나 있지 않았고, 언제나 나와 함께 하고 있었던 사람들이다. 내가 그들과 떨어져 있었을 뿐. 그렇기 때문에 주변인들이 참 고맙게 느껴 진다.

 

마음의 문은 결국 자기자신이 열어야 한다. ‘외롭다’라는 마음에 계속 갇혀 있기 보다는 자기 생각, 자기 뜻을 좀 내려놓고 그 마음에 힘을 좀 빼는 거다. 힘이 빠졌을 때 그 마음의 문도 쉽게 열수 있다. 내가 그 문을 직접 열어야 한다. 간절해 보기도 하고, 포기해보기도 하고, 그래서 그 마음들을 모두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내가 도망쳤던 세상과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그렇게 시작함으로 인해 외로웠던 마음은 걷히게 되고 다시 웃음을 찾을 수 있다.

loneliness and hope

나같은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주변에 자존감 높은 사람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하면서 그냥 훅~ 하고 지나가 버린다. 그런 이들에게 외로움이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냥 이런 마음을 대수롭지 않게 휙~ 넘겨 버린다. 그런 그들처럼 지금 당장은 그게 힘들지라도 계속 그렇게 생각하고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그렇게 노력 해야 한다. 나는 마음수련 명상을 통해 그런 나 자신을 제대로 돌아보고 그 마음들을 하나 둘씩 버리다 보니 꽉 붙잡고 있던 마음들이 실제로 놓아지게 되면서 얼굴색이 밝아지고 사람들과 웃게 되고 그렇게 조금씩 가벼워졌던 것 같다. 어쨌든 마음이 문제다. 절대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이 문제라는 것을 빨리 인지하고 해결해나가야 할 것이다. 내 마음이 문제인데 다른 곳에서 해결을 바라니까, 다른 곳에서 정답을 바라니까 해결이 안 되는 것이다.

마음수련 함께 살아가다

외로움. 불쑥 찾아 오게 된다면 그 내면의 마음을 철저히 되돌아 보길 바란다. 그리고 나서 그 마음들을 실제로 좀 놓아보자. 그랬을 때 얼마나 가벼워지는지 한번 느껴 봤으면 싶다. 부부싸움이 칼로 물 베기라는 말처럼 외로움과의 싸움도 손바닥 뒤집듯이 쉽게 벗어 날수 있다. 기억하자.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 보일 때는 절대 그 사람 곁을 떠나지 말고,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라면 내 주변 사람들이 내 마음이 열릴 때까지 내 곁에서 말없이 계속 기다려 주고 있다는 것을! 세상은 절대 혼자가 아니다. 함께 살아가도록 되어 있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고 순리이다. 우리는 절대 혼자가 아니다.

마음수련 경험자- 심리학 편

1 외로움

 

우리는 소중한 사람들이 힘들어 할 때 “그러게 왜 그랬어. 너가 그러니까 안 되는 거야. 넌 이제 끝이야” 같은 말은 잘 하지 않는다. 가뜩이나 힘든 사람에게 비난을 던져서 더 위축시키는 일은 괜찮은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자기 자신을 향해서는 이런 말들을 서슴지 않는다. “난 왜 이럴까”, “나는 항상 이래, 왜 나만”, “역시 나는 안 되는 놈이었어”, “내가 문제야. 왜 나만 문제여야 하나”, “나는 없어져야 해”

 

이런 연구가 있다. 삶이 어렵고 힘들 때, 사람이라면 누구나 여러 번 겪기 마련인 실패와 좌절 상황에서 자기 자신에게 어떻게 대하는지가 그 사람의 정신건강과 행복, 극복 능력, 실패 후의 태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Neff & Vonk, 2009).

 

2 쓸쓸함

살면서 절대로 그 어떤 실수나 실패도 해선 안되고 만약 하게 되면 그걸로 내 인생은 끝, 나는 고작 그거밖에 안되는 가치 없는 인간이라는 식의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작은 실패에도 쉽게 무너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나는 부족한 인간일 뿐. 인간이 이따금씩 실패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 이라며 비교적 현실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실패를 하더라도 좌절이 크지 않다고 한다.

 

어쩌면 부족함 많은 우리들에게 실패란 성공보다 더 당연한, 호들갑 떨 필요 없는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늘 있는 일이어서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 현실을 그대로 담담하고 쿨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따라서 스스로에게 너그러운 사람들의 실체는 자신의 잘못과 실패를 더 쉽게 인정하며, 그 책임 역시 본인에게 있음을 잘 받아 들이는 편이다. 반면 실패를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실패를 해도 그걸 인정하지 못하거나 인정하더라도 나는 책임이 없다며 책임을 회피하거나 상황과 상대의 탓으로 돌리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3 외로움

나는 어떤 사람이고 나의 행동패턴이 어떠한지 알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명상을 하고 있고 이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곤 한다. 나 역시 마음수련을 통해 나를 되돌아 볼 수 있었다. 나의 삶은 수많은 실패와 실망, 그리고 답답하거나 괴롭거나 하는 일이 유독 많았고, 그렇다 보니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조차도 극단적인 측면이 많았다. 예를 들면 친한 사람하고만 유독 말을 한다거나 평소 싫어했던 사람과는 부딪힘도 많았고, 또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하지만 속으로는 엄청난 가시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수련을 통해 되돌아본 나의 실체는 나 자신 뿐만 아니라 상대에게 조차 너그럽지 못한 편이었던 것이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들은 자기 자신뿐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실수를 할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그럼에도 누구나 따듯함과 친절을 필요로 함을 알지만 자신에게 조차 너그럽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다른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연구자들은 도로에서 타이어가 터져서 곤란해 하고 있는 사람이 과속(자신의 잘못)을 했거나 또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곤란해하고 있을 때, 또한 곤경에 처한 사람이 백인일 때 또는 히스패닉 등 소수인종일 때 각각 상대방을 도울 의향이 얼마나 있는지 물었다. 그 결과 스스로에게 너그러운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상대를 가리지 않고, 그 사람에게 일부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상대를 비난하지 않으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도움을 줄 의향을 보였다. 또한 너그러운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상대의 상황에 감정적으로 이입해 본인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덜 보였다. 공감 능력의 한가지 한계는 타인의 감정이 그대로 옮겨 온다는 특성 때문에 지나치게 공감 능력이 뛰어나 감정이입을 심하게 하는 경우, 감정 소진이 빨리 올 수 있다는 점이다(Batson et sl, 1987).

 

마음수련 심리학 관대함

이렇게 자신의 부족함이나 실패에 대해 그럴 수도 있지라고 너그럽게 받아드릴 줄 아는 것은 본인의 정신건강과 발전을 위해서뿐 아니라 타인의 행복, 나아가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데도 이바지할 수 있다고 한다. 긍정심리학자(THE JOURNAL OF Psychology)에 실린 한 연구에서 역시 스스로의 부족함에 따듯할 줄 아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부족함에도 너그럽고 관대한 모습을 보인다(Welp & Brown,2014)라고 하였다.

 

때론 공감 능력이 더 뛰어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끔찍한 상황이나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 상황을 접하는 것 자체가 본인에게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고 끔찍한 경험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그러운 사람들의 경우 기본적으로 삶의 어려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특성 때문에 타인의 어려움에도 심하게 가슴 아파하기보다 자신의 어려움을 대처할 때처럼 비교적 의연한 모습을 보였고 도움을 주려는 경향도 더 많이 보였다. 따라서 유독 자기에게만 관대하거나 혹은 유독 자기에게만 비판적인지는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마음수련 심리학 부족함

심리학자 Leary는 자신을 비난하고 탓하는 것이 버릇이라면 나와 비슷한 부족함을 지닌 타인을 비난할 자격을 미리 얻어 두는 행위라고 말했다. 자신을 향한 비난은 결국 ‘부족하면 비난을 받아야지’ 라며 타인을 향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자신을 향해 완벽 주의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은 타인을 향해서도 완벽을 요구하며 비판적인 경향을 보인다는 연구들이 있었다.

 

나는 마음수련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행위는 나 자신에 대한 이해부터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내가 하는 행동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또 어떤 상황을 어떻게 기억하고 그것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는지를 되돌아 보게 되니 내 마음이 그 동안 스스로에게 얼마나 부정적이고, 독하게 대했는지 알게 되었고, 결국 내가 상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지내왔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나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게 되는 순간부터 상대의 말이나 행동을 보았을 때 비로소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누구나 크고 작은 약점과 부족함을 갖고 살기 마련이다. 특히 그런 나의 부족함이나 상대의 부족함이 드러날 때 나와 상대를 비난하기 보다 따듯한 말로 격려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의 존재는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상대를 보기 전에 내 마음부터 보고 내 스스로의 마음을 먼저 챙겨 보는 건 어떨까? 내가 나를 응원하고 힘냈을 때 나 또한 상대에게도 그렇게 할 수 있으니 우리 모두 그런 응원을 받을 수 있다면 삶이 훨씬 따듯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따듯함을 허락했으면 좋겠다.

 

참고문헌

Batson, C.D., Fults, J., & Schoenrade, P. A. (1987). Distress and empathy: Two qualitatively distinct vicarious emotions with different motivational consequence. Journal of Personality, 9-39.

Neff, K. D& Vonk, R. (2009). Self-compassion versus global self-esteem: Two different ways of relating to oneself. Journal of Personality, 77, 23-50.

Welp, L.R., & Brown, C. M. (2014). Self-compassion, empathy, and helping intentions. The Journal of Positive Psychology, 9, 54-65

 

참고문헌